[젠더 기획특집] 젠더 이데올로기의 뿌리와 흐름 이해 3



지난 논고에서는 젠더 이데올로기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후기구조주의 이론을 살펴보았고 이번 마지막 논고에서는 프랑스 68혁명을 계기로 후기구조주의와 비슷한 시기에 시작된 페미니즘을 간략히 다루면서 페미니즘과 후기구조주의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는 젠더 이론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68혁명과 페미니즘 

68혁명과 함께 네오맑시즘의 영향을 받아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또 다른 이론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페미니즘이다. 이 시기의 페미니즘은 프랑스 68혁명을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활성화되었으며 사회 전반에 걸쳐 여성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68년 5월 프랑스 파리 근교의 낭테르 대학에서 일어난 학생징계 사건을 계기로 소르본느 대학생을 중심으로 일어난 학생시위는 기존의 위계질서와 구시대적인 체제와 권위에 대항하는 혁명적 성격을 띠며 유럽과 미국 전역으로 퍼지기 시작하였다. “금지하는 것을 금지하라”는 68혁명의 흐름에 합류하여 사회적 약자에 속했던 여성들은 남성 지배의 사회구조 속에서의 여성의 억압과 소외에 대해 반발하기 시작했고 이런 급진적인 여성 활동가들의 투쟁은 당시 억압적인 삶을 살던 여성들에게 돌파구를 던져주었으며 사회 속에서 여성들의 불평등이라는 공통적인 문제의식은 집합적인 성격을 띠며 빠르게 확산되었다.



페미니즘은 통상적으로 제1물결(1840년대~1920년대), 제2물결(1960년대~1990년), 그리고 제3물결(1990년~현재)로 구분한다. 

제 1물결 페미니즘 시기의 여성 운동은 남성과 동등한 법적, 정치적, 사회적 권리의 획득을 주된 목표로 삼았다. 수많은 여성들이 흘린 피와 땀의 결과로 사회 다양한 부분에서 법적으로 동등한 권리를 얻게 되었으며 20세기 초반에 비로소 참정권을 획득하는 성공을 거두며 막을 내린다. 

그러다가 68혁명을 기점으로 새로운 형태의 페미니즘이 등장하는데 이를 우리는 “제2물결” 페미니즘이라 칭한다. 제1물결 페미니즘이 여성의 남성과의 “법적 동등성”을 주장했다면 제2물결에서는 여성의 여성성을 부각시킴으로써 남녀의 “생물학적인 차이”를 주목하였다.



이 시기의 페미니스트들은 남성 지배적 사회 속에서의 여성의 성차별과 불평등을 지적하며 가부장적인 사회구조에 대한 배타적인 입장에서 출발하여 남성을 여성과 대립되는 존재로서 인식했다. 이들은 여성이 억압받는 이유는 남성 중심적인 사회 구조에서 근본적인 원인과 문제에 있다고 보았다. 이들은 남녀의 지배관계는 생물학적인 “차이”에서 시작되었고 그 차이는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는 사회구조를 만들어 냈으며 결과적으로 여성을 억압하고 사회적으로 소외시켰다고 주장했으며 그 사회구조에서부터의 해방, 더 나아가 그 뿌리의 해체를 부르짖었다. 이들이 주장하는 가부장제는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자리매김을 했고 50년이 지난 현재에도 페미니스트들도 이 가부장제를 바탕으로 그들의 논지를 펼치고 있다.

가부장적 이데올로기 정립의 뿌리 역할을 한 여성이 있는데 다름 아닌 페미니스트들의 대모격인 시몬느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voire)이다1). 보부아르는 그녀의 저서 『제 2의 성』(The Second Sex)(1949)에서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One is not born, but rather becomes a woman)는 유명한 명제를 남겼다2). 그녀에 의하면 여성이 여성스러운 이유는 여성스럽게 태어나서가 아니라 남성 중심적 사회가 여성을 지배하고 억압한 결과로서 후천적으로 나타나는 모습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그녀의 주장은 당시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의 가부장제의 기틀을 마련해 주었다. “여성은 만들어지는 것이다”에 내포되어 있는 또 다른 의미는 생물학적인 성(sex)과 사회적인 성(gender)의 구분 가능성이며 이는 후대 젠더 이데올로기의 근간을 마련해 주었다.

이 주장을 바탕으로 68혁명의 영향과 함께 많은 급진적 페미니스트 이론가들이 등장하는데 그 중 대표적인 인물이 케이트 밀렛(Kate Millet)이다. 제2물결의 시작을 알렸던 『성의 정치학』(Sexual Politics)에서 그녀는 여성억압의 뿌리는 가부장제의 성 및 성별 체계에 깊이 박혀있다고 주장하며 가부장제 개념을 확고히 다졌다. 다시 말해 생물학적인 성을 기반으로 하는 남성-여성 관계는 권력과 지배의 관계로 이해해야 한다며 사적인 영역이었던 성을 정치적 영역으로 공론화 시켰다. 그녀는 궁극적으로 가부장제에 의한 남성 지배를 타파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그에 대한 방안으로 여성의 성적 자유와 해방을 외쳤고 자신의 이론을 레즈비언적 삶으로 증명해 보였다. 당시 또 다른 대표적 급진 페미니스트로 『성의 변증법』(The Dialectic of Sex)의 저자 슐라미스 파이어스톤(Shulamith Firestone)을 들 수 있는데 그녀는 가부장제의 원인을 여성의 결혼, 더 나아가 여성의 “임신과 임신을 담당하는 역할”(childbearing and childbearing roles)에서 찾았으며 여성이 억압된 사회에서 진정한 자유를 찾기 위해서는 임신과 출산의 압제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그에 대한 대안으로 인공자궁 기술을 도입한 “인공 생식”(artificial reproduction)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그녀 역시 결혼을 거부하고 레즈비언의 삶을 살면서 자신의 이론을 실천화했다.

이러한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을 주축으로 70년대에 활발하던 페미니즘 운동은 80년대에 들어와서 백인 중산층 여성들의 전유물이라는 비판을 받으며 유색인종 및 소수민족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함으로써 페미니즘 내에서 다양한 분파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a woman”(단수)으로서 통합되고 단결되었던 페미니즘 운동은 80년대에 들어서 인종, 계층, 성적 지향, 문화 등의 요인으로 여성들 간의 차이를 인지하면서 여성으로서 통일된 하나의 정체성이 아닌 “women”(복수)의 페미니즘으로 다원화되었다. 이로 인해 여성들끼리 단결하여 가부장적 사회 속에 모든 여성을 가두어버린 남성에 대항해 하나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면서 제2물결 페미니즘 초기의 정신은 와해되기 시작했다.


주디스 버틀러와 젠더 이데올로기

그러는 가운데 90년대에 들어서 본격적으로 생물학적인 성(sex)이 아닌 사회적인 성(gender)에 관심이 집중되면서 생물학적인 성을 기반으로 남녀의 불평들을 외치던 래디컬 페미니즘은 하향세를 타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축에는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가 있다. 1990년 버틀러는 『젠더 트러블: 페미니즘과 정체성의 전복』(Gender Trouble: Feminism and the Subversion of Identity)에서 “여성”과 “남성”의 대립을 가능하게 하는 경계의 해체를 주장함으로써 더 이상 “여성” 중심의 논제를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언어학자, 후기구조주의자, 페미니스트, 레즈비언으로서 60년대 이후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후기구조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후기구조주의 언어 이론을 “성”이라는 개념에 적용시켜 이론을 실제화 시킨 인물이다.
 

후기구조주의의 이해를 바탕으로 한 버틀러의 『젠더 트러블』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두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첫 번째, 생물학적인 성(sex)과 사회적인 성(gender)은 분리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며 젠더가 섹스를 결정한다(Gender comes before sex)는 것이다. 섹스는 젠더에 앞서 존재하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며 사회적인 관습과 기대에 의해 후천적, 사회적인 요인에 의해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진 젠더라는 정체성이 자연화 된 개념이다3). 다시 말해, 그녀는 섹스나 젠더 둘 다 철저히 문화적인 개념이라는 것이다. 한편, 그녀의 두 번째 주요 논지는 젠더는 수행적이라는 것이다(“Gender proves to be performative”)4). 젠더는 사회 속에서 반복적인 수행을 통해 구성되는 결과이며 선험적인 정체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수행적인 행위에 집중함으로써 수행을 가능케 하는 행위자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는 다시 말해서 생물학적인 몸은 어떠한 행위를 하게 하는 통로일 뿐 행위를 일으키는 요인이 될 수 없다. 이러한 버틀러의 주장은 남성과 여성을 구분하는 생물학적인 차이를 무의미하게 만들며 전통 규범에서 벗어나는 모든 성행위를 가능케 하는 이론적 토대를 마련했다. 생물학적인 성에 기초한 모든 구별을 근절시키고자 했던 그녀는 “여성”이라는 범주를 넘어 소수자의 섹슈얼리티 문제로 확장시켰으며 이로 인해 그녀는 퀴어 이론의 창시자로 불리게 되었다. 버틀러가 구축한 젠더 이론은 큰 파장을 일으키며 현대 사회를 지배하는 젠더 이데올로기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교육에 깊이 침투한 젠더 이데올로기

이 젠더 이데올로기는 이미 우리 사회에 깊이 스며들어와 있으며 우리가 믿고 있던 공교육의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성교육의 행태를 보면 젠더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교실 안까지 깊숙이 침투해 들어와 있는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교실 안에서뿐만 아니라 이미 TV, 인터넷, 각종 미디어 등 사회 모든 부분에 젠더 이데올로기가 스며들어있다. EBS의 어린이 교양예능 프로그램 중 하나인 “자이언트 펭TV”의 펭수를 예로 들어보자. 펭수는 유투브에서 구독자 200만명 이상을 보유할 정도로 엄청난 인기몰이 중인데 펭수의 성별이 애매하다. “남자도 여자도 아닌” 성 중립적인(gender neutral) 펭귄으로 그려진다. 이와 관련해 펭수를 제작하는 이슬예나 PD는 2019년 12월 19일자 「여성신문」에서 펭수의 제작 목적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이(남녀 구분의) 자연스러움을 깨고 싶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펭수가 다양한 현장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콘텐츠의 핵심인데 여기에서 ‘펭수가 여성이냐 남성이냐’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저희 제작진들도 콘텐츠를 제작할 때 성인지 감수성을 공유하며 기획을 하기 때문에 틀에 박힌 고정관념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마치 여성과 남성을 구분하는 행위는 틀에 박힌 고정관념에서 나오는 결과로서 시대에 매우 뒤떨어진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이 생각을 기반으로 의도적으로 성의 구분을 해체하려는 시도가 펭수라는 캐릭터에 심겨져 있다. 이러한 의도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이 공교육의 미디어를 대표하는 EBS를 통해서 우리 어린이들에게 필터링이 없이 그대로 노출되고 있는 것이다. 아직 인간의 기본 가치인 도덕과 윤리의식이 바르게 서 있지 않은 아이들에게 잘못된 성 개념을 지속적으로 심겨주고 있는 것이다. 불과 70여년 전에 우리 인류를 유지시켜온 전통적인 가치를 해체하려는 몇몇의 급진적, 혹은 극단적인 사고를 가진 지식인들과 활동가들에 의해 만들어진 실체 없는 이념이 어린 아이들을 어떻게 세뇌시키며 사회 전반에 어떤 혼란을 가져오는지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다음 세대를 위한 교육의 방향 제시

이러한 무분별하고 비윤리적인 성교육을 우리는 그냥 지켜보고 있을 수 없다. 불완전한 인간의 얄팍한 사고에서 나온 실체 없는 이념과 이데올로기가 사회에 얼마나 큰 혼란과 갈등을 가져왔는지 우리는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다. 마르크스 이론을 바탕으로 사회계급의 불평등을 외치며 계급의 해방을 실행에 옮겼던 공산주의자들이 20세기 초반부터 소련, 중국, 북한, 일부 동남아시아(베트남, 캄보디아 등)와 동유럽권의 나라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죽음을 초래했는가. 그 마르크스의 이론의 변종인 젠더 이론은 성별 갈등과 불평등의 해결책으로서 오늘날 성별 구분의 와해를 가져오기에까지 이르렀다. 이미 성정체성을 해체하고 이를 법제화한 서구 유럽 나라에서 성에 대한 도덕과 윤리는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다. 이렇게 되면 사회는 자유만 외칠 뿐, 그 누구도 그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게 될 것이며 그 결과 무질서, 방종과 타락만 남을 뿐이다.

이럴 때 일수록 우리는 더욱 기본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이 사회와 국가, 더 나아가 인류를 지속적으로 유지해 온 기본 가치들을 현장에서 확실히 교육해야 한다. 현재 이 사회를 장악하고 있는 젠더 이론과 젠더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한 교육은 교육이 아니라 이념 주입일 뿐이다. 몇몇의 극단적인 사상가들과 학자들에 의한 실체 없는 주장으로 인류의 보편가치를 거스를 수 없는 것이다. 사회 질서를 유지시키던 기존의 가치까지 훼손시키는 교육은 교육이라고 볼 수 없다. 올바른 성교육은 남성과 여성에 대한 올바른 성의 개념과 함께 책임과 자기절제, 도덕적 가치와 윤리적 자제심 등을 함께 가르쳐야 할 것이다. 또한 사회와 국가, 더 나아가 인류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인 가족의 중요성을 명확히 가르쳐야 한다. 가정이란 젠더 이념에 사로잡힌 이들이 말하는 성적 다양성을 기반으로 하는 임의적인 조합이 아닌 염색체와 호르몬이 명확히 다른 남성과 여성의 화합을 기반으로 하여 자연의 순리에 따른 임신과 출산으로 구성되는 공동체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사회는 존속해 왔고 이 기본 질서를 기반으로 사회의 질서가 만들어졌으며 수 천년 간 인류가 지탱해왔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실상은 없는 허구일 뿐인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이념 주입이 아닌, 이 사회를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도록 지탱해 온 지혜와 보편 타당한 질서를 가르쳐야 한다. 이것이 바로 올바른 성교육이며 사회를 건강하게 존속시켜 줄 수 있는 길이다.



1) 시몬느 드 보부아르는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의 연인으로 모성, 가족을 거부했고 성적 해방을 주장하며 피임과 낙태를 옹호하였다. 여성도 남성과 동등하게 직장을 가질 것을 촉구하며 남성과의 권력 투쟁의 필연성을 주장했는데 그녀의 정신을 후대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이 그대로 수용하여 발전시켰다.

2) Simone de Beauvoir, The Second Sex, trans. and ed. H. M. Parshley (New York: Vintage Books, 1974), 301.

3) Judith Butler, Gender Trouble: Feminism and the Subversion of Identity, (New York: Routledge, 1990), p. 34.

4) Ibid,, p. 33.





현숙경 교수

Texas A&M 영문학 석,박사 졸업. 침례신학대학원 실용영어학과 교수/ 학과장. 바른인권여성연합 연구소 세움 연구소장




서울특별시 서초구 남부순환로 333길 20, 4층 산지빌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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