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기획특집] 젠더 이데올로기가 야기하는 가정해체와 건강한 가정구축의 중요성






전통적 결혼 및 가족질서에 적대적인 시대 조류와 그 폐해  

지난 200년 동안 서구세계의 영적·정신적 기류는 전통적 결혼 및 가족질서에 적대적인 방향으로 흘러왔다.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 많은 사상가와 지성인들(장 자크 루소, 어거스트 콩트, 샤를 푸리에, 프리드리히 니체, 지그문트 프로이트, 칼 융, 빌헬름 라이히, 알프레드 킨제이, 존 머니 등)은 전통적 결혼과 자녀 양육의 요람인 가정을 해체시키는 데 주력하였다. 많은 활동가들 또한 합세하여 성적인 억압을 제거하고 부모와 자녀관계를 해체시키고자 총력을 기울였다.

특별히 20세기의 모든 가정해체 운동은 맑시즘(Marxism)에 영적·정신적 기원을 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정해체 운동에 앞장섰던 이들은 서로 다른 동기와 이해관계를 가졌지만, 하나의 목표를 위해 의기투합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성규범의 해체-가정의 해체-기독교의 해체’였다. 종국적으로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기독교 교리를 파괴하기 위해 전력투구했는데, 이들의 끈질긴 노력으로 기독교의 근간이 흔들리게 되었다.

가정해체가 급물살을 타게 된 것은, ‘성규범의 해체-가정의 해체-기독교의 해체’를 정당화하는 이론인 네오 맑시즘(Neo-Marxism)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면서부터이다. 네오 맑시즘은 유대교-기독교 문화를 무너뜨리는 ‘조용한 혁명’으로 전략을 수정한 맑시즘의 새로운 분파, 문화 맑시즘(cultural Marxism) 으로서, 안토니오 그람시(A. Gramsci)가 제시한 이 혁명의 아젠다에서 가족해체는 수위를 차지한다1).특별히 좌파들의 지적인 무장을 위한 핵심 브레인인 ‘프랑크푸르트학파’(the Frankfurt school)가 지성인들을 사로잡으면서 전통적 가정의 파괴를 정당화하는 이론적·사상적 체계가 구축되었다.

마침내 1968년 프랑스에서 일어났던 ‘68혁명’은 200년간의 반(反)체제-반(反)문화-반(反)기독교 운동을 하나로 결집시킴으로써 가정파괴를 강행할 거센 시대조류를 만들어냈다. 서구세계는 패륜적 성혁명(sexual revolution)을 감행한 68혁명을 결정적 분기점으로 그 이전과 그 이후로 양분될 만큼 문명사적 대전환을 겪었는데, 그 중심축에 가정해체가 꽈리를 틀고 있는 것이다. 68혁명으로부터 자양분을 받고 패륜적 학문을 발전시킨 유명한 학자들(자크 라캉, 미셸 푸코, 루이 알튀세르, 질 들뢰즈 등)은 전통적 결혼 및 가족질서의 파괴를 한 목소리로 강변하였다.

가정을 적대시하는 이들의 무책임하고 불의한 행보로 인해 오늘날 이 시대는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는 물질적 풍요를 누리면서도, 나날이 영적·정신적 혼란에 빠져가고 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삶의 구심점을 잃고 불안해하고, 우울증을 위시한 각종 정신질환으로 인해 삶의 환경이 황폐화되고 있다. 이 시대가 안녕(安寧)하지 못한 주된 원인으로 우리는 가정이 파탄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가정을 지키는 것은 인간 자신을 지키는 일일 뿐 아니라, 사회와 국가, 더 나아가 문명 자체를 지키는 막중한 일인 것이다.

이 사실을 너무나 뼈아프게 겪었던 급진적 페미니즘의 본산지 미국에서는 ‘가정으로 돌아가자.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움직임이 조용히 일고 있다. 그것도 한때 급진적 페미니즘을 추종했던 여성들이 ‘가정으로의 복귀(復歸)’를 말하면서, 이것을 페미니즘의 후퇴나 역주행이 아닌 페미니즘의 연장이자 새 조류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에밀리 맷차(E. Matschar)는 ‘새로운 가정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이것이 미국의 문화적·정치적 근본배경을 움직일 수 있는 대변혁이 될 거라고 예견하고 있다2). 이를 통해 우리는 극에 달한 영적·정신적 불안과 우울, 사회적·정치적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점점 더 많은 이들이 가정의 부름에 이끌린바 될 거라고 예단할 수 있다.


 

젠더 이데올로기가 야기하는 가정 해체의 위험성 

인류역사에서 전통적 결혼 및 가족질서에 가장 적대적인 시대사조는 명백히 젠더 이데올로기(gender ideology)이다. 맑시즘을 근간으로 세력을 확장한 급진적 페미니즘과 성정치-성혁명 이론이 결탁하여 발흥한 젠더 이데올로기의 파급력이 매우 우려스러운 것은, 이것이 가정해체를 야기하는 위험한 시대사조라는 점이다. 오랫동안 죽음 연구에 천착하면서 가정공동체의 중요성을 절감했던 필자가 젠더 이데올로기를 연구하면서 특히 주목한 것은, 바로 젠더 이데올로기와 가정해체 사이의 긴밀한 상관성이다. 젠더 이데올로기가 영향력을 확대함으로 인해 장구한 인류 사회의 관습과 규범이 지난 50년 사이 급속도로 해체되고 있는데, 특히 일부일처제(一夫一妻制)가 직격탄을 맞고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젠더 이데올로기는 한 남성과 한 여성의 신성한 결합인 일부일처제 대신 무수히 다양한 젠더 정체성을 가진 성소수자들(LGBTQIA)의 폴리 아모리(polyamory, 복수연애)를 적극 옹호함으로써 가정해체를 집중적으로 공략한다. 특히 ‘인권’ 혹은 ‘성적 다양성’이라는 명목으로 레즈비언적(lesbian)·게이적(gay)·바이섹슈얼적(bisexual)·트랜스젠더적(transgender)·인터섹슈얼적(intersexual)··· 파트너십, 그 외 온갖 괴이하고 비정상적인 관계를 일부일처제 결혼에 대한 대안적 결합으로 미화하는 패륜적 성혁명을 강행하는데, 이 성혁명의 핵심적 요체는 명백히 성규범의 철폐를 통한 가정해체이다.

21세기 들어와 가열차게 전개되는 젠더 이데올로기의 핵심 전략인 젠더 주류화(=성주류화, gender mainstreaming)는 남녀 고유의 성정체성을 해체시킬 뿐만 아니라, 가정해체를 주요 목표로 삼는다. 일반적으로 젠더 주류화는 ‘성차별 철폐 운동’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상 이것은 절반의 진실에 불과하다. 젠더 주류화가 겨냥하는 ‘성차별 철폐’는 종국적으로 차별의 근원이 되는 남녀 성정체성의 해체, 곧 남성의 시각에서 여성의 권리를 신장시키는 방법은 한계가 있으니 아예 성별을 해체시켜 버리자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일부일처제에 기반한 결혼 및 가족제도가 왜곡된 성역할과 이에 따른 성적 위계질서를 파생시키기 때문에 이 또한 해체시켜 버리자는 것이 젠더 주류화의 숨은 전략이다.

젠더 이데올로기가 획책하는 가정해체는 젠더 이데올로기의 실천 매뉴얼인 ‘욕야카르타 원칙’(the Yogyakarta Principles)에 공공연하게 드러난다. 특히 욕야카르타 제24원칙은 “모든 사람은 성적 지향 및 젠더 정체성에 상관없이 가족을 형성할 권리가 있다. … 어떤 가족도 구성원의 성적 지향 및 젠더 정체성을 이유로 차별을 당해서는 안 된다.”고 전제함으로써 전통적 결혼을 젠더들 간의 자의적 관계로 대체시키고 있다. 성적 지향과 젠더 정체성이 욕야카르타 원칙의 핵심 용어인데, 여기서 우리는 이성애(異性愛)에 근거한 전통적 가족의 기준, 곧 생물학적 자녀를 출산하는 한 남성과 한 여성의 결혼이라는 기준을 제거하는 대신 유동적인 젠더를 가진 모든 부류의 사람들(남녀 가리지 않고) 간의 결합을 가족이라고 새롭게 규정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3).

특별히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욕야카르타 원칙이 동성애에 기반하여 결혼제도를 완전히 다르게 정의한 사실이다. 동성애 옹호세력이 동성 파트너십을 한 남성과 한 여성의 결혼과 동등하게 만드는 작업은 인류가 수천 년간 지켜온 결혼과 가족의 유산에 대한 역사적 파괴, 법적 제도로서의 결혼과 가족의 개념에 대한 엄청난 상처라 아니할 수 없다. 전 세계 인구의 0.1%도 안 되는 사람들만이 동성 파트너와의 관계를 합법화(동성결혼)하는 데 직접적 이해관계가 있는데, 그렇다면 젠더 이데올로기 추종자들이 보편적 결혼의 의미를 왜곡시키면서까지 동성결혼을 강행하는 저의가 과연 무엇인지 우리는 냉정하게 직시해야 할 것이다.

우리를 더욱 당혹케 하는 것은, 유력한 국제기구들이 불과 수십 년 사이 젠더 이데올로기에 편승함으로써 가정해체에 앞장서는 현실이다. 사실 1948년 발표된 유엔(UN)의 세계인권선언문 제16조에 “가족은 사회의 자연적·기초적 단위로서 사회와 국가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고 규정하듯이, 그 동안 유엔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성적 신실함이 바탕이 되는 일부일처제가 가족을 이루는 근간으로서 사회와 국가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그러나 1989년 이후 유엔과 산하기관들은 세계인권선언문이 선포했던 기본 정신을 포기함으로써, 남녀의 성정체성을 해체시키고 결혼 및 가족질서를 파괴하며 성도덕을 없애버리며 낙태를 인권이라고 주장하는 중심지가 되어버렸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엔은 전 세계인들의 희망의 등불이었지만, 현재는 패륜적 성혁명의 선봉에 서 있다4).

평화에 대한 유럽인들의 열망으로 탄생한 유럽연합(EU) 역시 50년이 지난 작금에는 젠더 이데올로기를 대변하는 권력기구로 변질되었다. 1950년 발표된 ‘유럽인권조약’은 한 남성과 한 여성의 결혼을 보호하면서 결혼할 수 있는 연령의 남녀는 각 국가의 법에 따라 결혼하고 가족을 형성할 권리가 있다고 규정했지만, 2000년 유럽연합은 ‘유럽연합 기본권헌장’에서 결혼제도를 거론하면서 더 이상 남녀를 언급하지 않는다. 여기서 결혼과 가족은 남녀관계와는 무관한 제도로 인식되는데, 이것은 동성결혼에 대한 법적 허용 가능성의 포문을 여는 일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유럽연합은 회원국이 되기 원하는 유럽 국가들에게 젠더 평등(=성평등) 방안, 특히 성적 지향과 젠더 정체성에 대한 젠더 주류화 관련 조치들을 채택할 것과 아울러 혐오범죄법 및 차별금지법을 입법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5).

유력한 국제기구들이 결혼과 가족의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상황 속에서 ‘어머니’라는 숭고한 단어가 성차별적 고정관념을 고착화시킨다는 명분으로 서구세계에서 모욕당하고 있다. 일례로 스위스 사회주의자이자 유럽각료이사회 구성원인 도리스 스텀프(D. Stump)는 더 이상 여성을 수동적이고 열등한 존재인 ‘어머니’로 묘사하지 말 것을 요구한 청원서를 제출한 바 있으며, 스코틀랜드의 국가보건서비스는 동성혼 부모를 차별한다는 이유로 ‘엄마’와 ‘아빠’라는 호칭을 금지하였다. 미국 국무장관이었던 힐러리 클리턴(H. Clinton)도 ‘어머니와 아버지’ 대신 ‘부모1과 부모2’를 사용하도록 시도했었지만, 엄청난 비판에 봉착하자 ‘어머니 혹은 부모1’, ‘아버지 혹은 부모2’라고 문서 양식에 기재하는 선에서 한발 물러서야 했다. 모든 인류가 생명을 빚지는 존재인 어머니와 아버지를 존중하는 것이 마땅함에도, 그것이 동성애자들에게 차별을 느끼게 한다는 이유로 언어 청소를 당하는 현실에 깊은 우려와 의분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젠더 이데올로기가 강타한 서구세계에서 ‘결혼’과 ‘가족’이라는 단어는 공적으로 인정되는 한 남성과 한 여성의 신실하고 지속적인 결합이라는 보편적 의미를 강탈당한 지 오래다. 결혼을 단지 육체적 쾌락을 즐길 수 있는 계약관계(때로는 서로의 혼외정사도 허용할 것을 요구하는)로 간주하는 상황이 결혼의 안정성을 극도로 약화시킴으로써 이혼율도 급증한 지 오래다. 오늘날엔 왕자가 왕자와 결혼하는 유치원의 그림책으로부터 덕지덕지 짜깁기해 놓은 듯한 모습의 가족, 성소수자들의 무지개 가족까지 포괄한 넓은 범위의 가족들이 모두 동일하다고 거론된다. 심지어 젠더 이데올로기 추종자들은 일부일처제를 타파하기 위해 다수의 남녀들이 동거하는 폴리 아모리, 다(多)애인제를 제안하기도 한다. 이런 불안정한 가정에서 계속 바뀌는 다수의 연인들을 편력하면서 상처투성이로 망가져가는 부모들을 바라보는 아이들 또한 얼마나 큰 상처를 받는지 모른다.


 

건강한 가정공동체 구축과 세대 전승의 중요성 

젠더 이데올로기가 전통적 결혼 및 가족제도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상황 속에서 필자가 건강한 가정공동체 구축과 세대 전승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가정을 지키는 것이 바로 인간 자신을 지키는 일, 더 나아가 사회와 국가와 문명 자체를 지키는 일이라는 사실을 오랜 연구를 통해 뼈저리게 절감했기 때문이다. 즉 가정은 단순히 자연적·사회적 구성단위가 아니라, 남녀 간의 관계와 세대 간의 관계를 끊으려야 끊을 수 없게 이어주는 생명줄, 인류가 후손에게 대대로 전수해주고 길이 보존해야 할 인류의 보고(寶庫)이다. 이러한 가정은 서로에 대한 진실한 사랑의 결실인 자녀를 낳기 원하는 한 남성과 한 여성의 일부일처제에 기초해야 올바르게 세워질 수 있는데, 그 연유는 이 안에서 인간의 성(性)이 거룩해지고 보호받고 축복받을 수 있음은 물론 다음세대가 가장 잘 자라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세대는 갈등이 적은 결혼생활을 하는 생물학적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랑을 받으면서 가장 잘 성장함으로써, 건강하고 안정된 가정은 건전한 사회인이자 신실한 신앙인을 배출할 수 있다. 그러나 건강하지 못한 가정이 늘어날수록 그만큼 공적 자금으로 운영되는 청소년서비스, 사회복지사, 정신과의사, 심리치료사, 교정복지시설, 종교기관 등이 더 많은 사후처리를 떠맡아야 하지만, 삶의 영역은 점점 더 황폐해져 갈 수밖에 없다. 가정은 사회공동체의 기본 단위이므로, 가정이 건강하지 못하면 사회와 국가도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처럼 건강한 가족공동체가 국민 개개인의 행복을 넘어 사회와 국가공동체의 안녕과 긴밀한 상관관계에 있다면, 모든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하여 건강한 가정을 구축할 수 있는 방도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젠더 이데올로기가 감행하는 패륜적 성혁명의 거센 파고 앞에서 가정이 해체되고 지구촌 사람들의 심령이 황폐화되는 위기에 직면하여, 한국교회는 가장 중요한 정서적 안전망인 건강한 가정공동체를 재건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필자는 이 시대의 기초가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젠더 이데올로기가 강행하는 성혁명의 핵심 전략인 젠더 주류화(=성주류화, gender mainstreaming)에 대항하여 가정 주류화(family mainstreaming)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특별히 필자는 존엄한 삶·존엄한 죽음·존엄한 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실천적 과제에 몰두하면서 건강한 가정공동체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한 개인에게 있어서 가정적 유대관계는 삶의 질은 물론 죽음의 질도 좌우하는 중요 조건, 곧 삶의 존엄·죽음의 존엄·인간의 존엄을 결정하는 최대 변수라고 진단한다. 또한 현재 한국 사회의 심각한 현안 중에서 긴급히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할 사회문제인 자살을 막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예방 기제도 건강한 가정이다. 실제로 가족의 정서적·사회적 지지는 자살 시도자의 행동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많은 연구자들은 보고한다6). 그 연구결과에 따르면, 자살 시도자는 가족과 갈등이 많은 반면, 가족으로부터 정서적·사회적 지지를 받는 사람은 자살행동이 매우 낮아진다. 그러므로 가족의 따뜻한 후원과 진심 어린 격려, 부모의 조건 없는 사랑과 힘들 때 옆에 있어주는 형제자매의 존재는 자살의 훌륭한 방어요인이 될 수 있다7).

한편 가정공동체가 무너져서 가족의 따뜻한 지원을 받지 못해 발생하는 고독사(孤獨死) 및 무연사 (無緣死)가 최근 우리 사회에서 급증하는 상황 속에서도 우리는 가정의 중요성을 확연히 인식할 수 있다. 곁에 돌봐주는 사람 하나 없이 혼자 살다가 혼자 맞이하는 죽음, 자살이나 지병 등으로 쓸쓸히 죽음을 맞이한 후 시간이 한참 지나 부패한 주검으로 발견되는 ‘고독사’, 고독사를 넘어 모든 인간관계가 끊긴 상태에서 홀로 죽어 시신을 거두어줄 사람조차 없는 ‘무연사‘, 이것은 가족을 비롯한 모든 사회적 관계망이 해체된 사회에서 연(緣)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겪는 참담한 사회현상이다8). 고독사가 전통적 가족관계의 붕괴로 말미암은 가정해체의 결과물이라는 것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건강한 가족관계는 서로 동고동락(同苦同樂)하면서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나누기 때문에 개개인과 사회구성원에게 없어서는 안 될 가장 중요한 정서적 안전망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필자는 젠더 이데올로기의 최대 희생양인 남성 성소수자들의 고독사 위험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일반적으로 이혼 남성의 자살률은 고령층으로 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는데, 고령의 남성 미혼자의 자살도 그에 못지않게 매우 심각하다. 이것은 배우자와의 충실한 가정생활이 자살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그런데 필자가 자살과 고독사를 연구한 결과, 상당수 고독사 희생자가 자살로 목숨을 잃은 것으로 밝혀졌을 뿐만 아니라, 양자가 발생하는 원인이 중첩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필자가 진단하는 자살과 고독사의 최대 위험군은 일정한 직업 없이 지병을 앓으면서 혼자 사는 중장년 이혼 남성 혹은 독신 남성이다9). 그런데 이미 알려진 것처럼 남성 동성애자들은 주로 40세 이전엔 다수의 파트너들과 복수연애하면서 성적으로 방종하는 삶을 살다가, 40·50대 이후엔 그로 말미암은 각종 신체적 질병으로 인해 파트너들에게서 버림받고 실직하고 파탄난 인생을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필자는 향후 상당수 남성 동성애자들이 병든 몸으로 외롭게 살아가다가 홀로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자살과 고독사의 직격탄을 맞게 될 거라고 우려한다. 

건강한 가정공동체의 구축은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야 할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사명을 위해서도 중차대한 일이다. 특히 “젊은이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는 격언이 있는데, 이것은 패륜적 성혁명이 횡행하는 영적·사상적 전쟁에서 과연 누가 승리할지를 결정하는 말이다. ‘전통’(tradition)이란 단어가 ‘전수하다’는 의미의 라틴어 ‘트라데레’(tradere)에서 유래하듯이, 만일 어떤 세대가 그 조상들로부터 인간이 반드시 지녀야 할 미덕들을 전수받지 못하면, 그들 역시 다음세대에 이를 전수하지 못할 것이다10). 무엇보다도 기독교 신앙이 한 세대를 거쳐 다음세대까지 전승되지 못하면, 다음세대는 기독교 가치체계를 전수받지 못할 것이며 기독교 전통은 종언을 고할 것이다.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주일학교가 문을 닫고 다음세대가 급감하는 상황은 우리를 더욱 근심케 한다11).  진정 건강한 가족이 가장 중요한 정서적 안정망이라면, 가장 중요한 영적 안전망은 바로 신앙일진대, 기독교 신앙이 붕괴된다면, 이것은 그야말로 인류의 대재앙이 될 것이다.
 


 패륜적 성혁명 시대 속에서 사수해야 할 가정 중심의 성결한 성윤리

고대 이교도 세계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계시는 전적으로 새로운 것이었다. 이스라엘 근동에는 절제된 성규범이 존재하지 않아서 이방 족속들은 동성애(homosex)와 근친상간(incest), 수간(zoophilia) 등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행했지만, 이 음란하고 패역한 세계에서 하나님께서 선민(選民)된 이스라엘에게 주신 계명은 이전엔 전례가 없는 거룩한 성혁명이었다. 하나님은 동성애를 통해 상호보완적인 성의 경계를 넘고, 근친상간을 통해 혈연간의 경계를 넘고, 동물과의 성관계를 통해 생물 종간의 경계를 넘는 것을 철저히 금지하셨다12). 특별히 인간의 성행위는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일부일처제(一夫一妻制) 안에서 거룩해지고 보호받고 축복받을 수 있는데, 이를 통해 가정의 기초가 올바로 세워지고 다음세대(기독교 신앙을 후대에 전수할 미래세대)가 가장 잘 자라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정의 중요성을 유대인들은 수천 년 동안 생명처럼 귀하게 여겨왔는데, 가정이야말로 종족이 멸절 당하는 온갖 시련과 고난 속에서도 그들이 살아남을 수 있게 한 원초적 힘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유대 민족의 삶은 물론 유대 문명의 기반은 가정 중심의 성결한 성윤리라고 할 수 있다13). 사실상 기독교가 2천년의 유구한 역사를 이어올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가정이 건재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상황이 이러하다면, 다음세대에 기독교 신앙과 가치체계를 전수하는 일은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이 없을 만큼 우리 세대의 가장 중차대한 사명일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그리스도인의 책임적 과제가 막중한데, 역사상 가정 중심의 성결한 성윤리를 해체하려는 움직임에 대한 저항은 항상 기독교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잘못된 시대사조가 휩쓸고 지나가면서 세상을 부패시키지만, 각 시대마다 하나님의 진리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한 그리스도인으로 말미암아 세상은 정결해지게 된다. 패역한 시대사조가 사람들의 사고와 행동을 강하게 사로잡을수록, 그리스도인은 변함없는 기독교 복음의 진리를 밝히 드러내야 할 책무가 있다14). 그러므로 음란한 성혁명이 횡행하는 21세기에 그리스도인은 인류문명의 무모한 도전에 강력한 제동을 걸고 시대와 지역을 초월하여 인류가 반드시 사수해야 할 윤리적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기독교 공동체만이 감당할 수 있는 시대적 과제라는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 특별히 젠더 이데올로기가 성도덕과 가정을 총공격하는 상황 속에서 가정 중심의 성결한 성윤리를 지켜내야 한다.

동성애와 관련하여 다른 종교들이 일체 함구하면서 불의한 타협의 길을 걸어가는 상황 속에서 특히 기독교는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당하는 반(反)인권적 폐해와 국민건강을 위협하는 보건 위생적 문제(‘한국 HIV/AIDS 코호트 연구팀’이 2006~2018년까지 에이즈 감염인을 추적 조사한 결과, 전 세계적으로 신규 감염이 감소하는 데 반해, 유독 우리나라는 젊은층에서 급증하는데, 주된 감염 경로로 71.5%가 동성 및 양성 간 성접촉을 지목15))를 고발함으로 반(反)동성애를 표명하고 있다. 이로 말미암아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동성애를 반대하는 기독교를 제외한 모든 세력의 연합, 일명 ‘악의 연합’이 이루어짐으로써 기독교를 핍박하는 위태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되었다. 이러한 위중한 시대상황 속에서 한국교회와 성도들은 의에 살고 의에 죽는 일사각오(一死覺悟)의 일념으로 헌신하는 가운데 여러 전문가와 연합하여 다각도로 치밀한 자세로 동성결혼 합법화를 반드시 막아내야 할 것이다.





1) 이탈리아 맑시스트 안토니오 그람시(A. Gramsci)가 주창한 ‘조용한 혁명’ 아젠다를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1. 지속적 사회변화로 혼란을 조성한다. 2. 학교와 선생의 권위를 약화시킨다. 3. 가족해체를 추진한다. 4. 어린이들에게 성교육 및 동성애 교육을 실시한다. 5. 교회를 해체한다. 6. 대량 이주와 이민으로 민족 정체성을 파괴한다. 7. 인종 차별을 범죄로 규정한다. 8. 사법 시스템을 신뢰할 수 없도록 만든다. 9. 복지정책을 강화하여 국가나 기관의 보조금에 의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한다. 10. 언론을 조종하고 대중 매체의 수준을 저하시킨다. 11. 과도한 음주를 홍보한다.

2) E. Matchar, 『하우스 와이프 2.0』(서울: 미메시스, 2015), 10-22.

3) Cf. G. Kuby/정소영 옮김, 『글로벌 성혁명』(서울: 밝은 생각, 2018), 103-128.

4) Cf. 위의 책, 81-102

5) Cf. 위의 책, 129-146.

6) 곽혜원, 『자살문제, 어떻게 할 것인가』(서울: 21세기교회와신학포럼, 2011), 71-80.

7) E. Durkheim/황보종우 옮김, 『자살론』(서울: , 2011), 238-239, 241, 323-330.

8) 곽혜원, 『존엄한 삶, 존엄한 죽음』(서울: 새물결플러스, 2014), 347-348.

9) 위의 책, 376.

10) G. Kuby/정소영 옮김, 『글로벌 성혁명』(서울: 밝은 생각, 2018), 301-302.

11) 곽혜원, “한국 교회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식”, 제2종교개혁연구소 엮음, 『제2종교개혁이 필요한 한국교회』(서울: 기독교문사, 2015), 183.

12)  G. Kuby, 『글로벌 성혁명』, 301-302.

13) 위의 책, 266.

14) 위의 책, 265.

15) 김준명, “한국 HIV/AIDS 코호트 연구”, 「성과 생명윤리 포럼 자료집」(2018.10.15.), 27-34





곽혜원 박사

이화여대 사회학과를 졸업했고, 한세대와 장로회신학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했으며, 독일 튀빙엔(T bingen)대학에서 조직신학 박사학위(Dr.thel.)를 받았다. 현재 21세기 교회와 신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하는 연구 공동체 <21세기교회와 신학 포럼>을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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