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기획특집] 젠더 페미니즘의 확산으로 심화되는 ‘성 양극화’와 크리스천 여성의 사명


급진적 페미니즘에서 젠더 이데올로기로의 변질과 그 폐해
인류역사상 전통적 가정공동체에 가장 적대적인 젠더 이데올로기(gender ideology)는 본래 페미니즘에서 파생되었다. 정확히 말해 이것은 급진적 페미니즘(radical feminism)의 변질된 시대사조이다. 페미니즘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사상적으로 변천해왔는데, 이는 크게 제1세대: 초기 페미니즘(1789~1914), 제2세대: 급진적 페미니즘(1914~1990), 제3세대: 젠더 이데올로기(1990~)로 구분된다. 19세기 중엽 여권신장 및 남녀평등 운동으로 태동한 초기 건전한 페미니즘은 ‘68혁명’을 결정적 분기점으로 급진적으로 선회했다가, 21세기 들어와 인류문명을 위협하는 시대사조로 급부상한 것이다.

급진적 페미니즘과 젠더 이데올로기가 같은 뿌리에서 연원하므로, 필자는 ‘젠더 페미니즘’(gender-feminism)이라는 시대사조를 주창하였다. 우리는 두 시대사조의 사상적 결합인 젠더 페미니즘을 반드시 논의해야 하는데, 그 이유는 양자를 함께 조망하고 분석해야 성정체성이 해체되는 이 시대의 문명사적 위기를 근원적으로 파헤치고 실효성 있는 대처방안을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페미니즘은 젠더 이데올로기로 변질되었는가?’, ‘젠더 이데올로기를 강행한 중추세력, 결혼 및 가족구조를 해체시키는 패륜적 성혁명(sexual revolution) 세력은 과연 누구인가?’ ‘어떤 연유로 이 세력은 생물학적 성인 섹스(sex) 대신 사회·문화·심리적 성인 젠더(gender)를 성정체성을 나타내는 주류 용어로 보편화시켰는가?’ 이 거대한 움직임의 주체는 다름 아닌 맑시즘(Marxism)에 사상적·정신적 기반을 둔 젠더 페미니스트들이었다. 20세기의 모든 가정해체 운동을 견인한 맑시즘은 역사상 최초의 계급투쟁이 일부일처제 안에서 남편과 아내 사이의 투쟁이라고 강변했는데, 이들은 계급투쟁이 일어나는 결혼 및 가족구조로부터 해방을 꾀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젠더 페미니스트들을 대내외적으로 선동했던 가장 유력한 동인은 무엇인가? 이는 다름 아닌 남녀차별이 도무지 극복되지 않으니까 아예 생물학적 성별을 해체시키는 젠더 이데올로기로 나아갔을 뿐만 아니라, 여성차별의 강고한 질서인 결혼 및 가정을 파괴시키려 했던 것이다. 이들은 성차(性差)가 생물학적 결정이 아닌 사회적 관행의 결과임을 강조하기 위해, 기존의 성별을 의미하는 섹스 대신 젠더를 그토록 종용했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여성들이 역사의 전면에 나선 현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실 그동안 인류역사에서 파괴적 결과를 가져온 행위나 사상 체계를 발전시킨 것은 거의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는데, 이를테면 폭동과 전쟁, 대량살상 등은 거의 모두 남성들이 자행한 일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인류문명을 위협하는 패륜적 성혁명은 여성들이 주도한 혁명인데, 이것은 인류문명사에서 거의 유례가 없는 일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오랜 세월 극도로 억압받아왔던 여성들의 복잡한 심경, 곧 상처와 좌절, 분노를 읽을 수 있다. 역사상 얼마나 많은 여성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난과 슬픔, 수치와 굴욕을 겪으며 모질고 한많은 인생을 살다 갔는지 모른다. 남성 중심적 체제에서 고통당하는 여성들의 존엄성을 회복시키기 위한 일환으로 태동한 페미니즘이 성정체성을 해체시키는 젠더 이데올로기로 변질된 것은 인류 문명사적으로 실로 애석하고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실 그 역사적 배경, 곧 성차별 문제가 인류역사의 장구한 세월 동안 근절되지 못하고 고질적 악행으로 연면히 이어져 내려온 현실은 참혹한 역사이기에 이에 대해선 진정성 있는 문제 제기와 해결 노력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문제 해결 방식이 성정체성의 해체를 통해 인륜(人倫)에 치명적 위해를 가하고 고귀한 인간 존재를 파괴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이는 또 다른 병폐가 되어 인류문명을 파탄시키는 대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깊이 유념해야 할 것이다. 특히 젠더 페미니즘이 강행하는 패륜적 성혁명으로 말미암은 폐해가 성규범의 해체로 이어지고 건전한 가정공동체를 파괴시킴으로써, 결과적으로 사회 전체에 타락과 패륜을 확산시킨다는 사실은 거대한 대재앙의 단초가 될 것이다.


젠더 페미니즘의 확산으로 '성 약극화'가 심화되는 한국사회
최근 몇 년간 한국 사회의 최대 화두 중 하나는 페미니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는 ‘페미니즘 열풍’이 불고 있는데, 이 열풍은 대학가를 넘어 우리 사회 전반의 트렌드가 됨으로써 소위 ‘페미니즘 전성시대’가 도래한 듯하다. 사실 장구한 남성 중심적인 역사를 감내하면서 숨죽이고 살아왔던 이 땅의 어머니들은 페미니즘 전성시대 속에서 격세지감을 느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사회의 페미니즘 현상이 극심한 남녀(男女) 분리주의를 통해 사회갈등 및 국민분열을 일으킴으로써 사회적 병리현상으로 치닫는 현실이다. 양성(兩性) 간에 조롱과 혐오가 점점 극단화(여혐·남혐·극혐)되다 보니, 이성(異性)에 대한 견제와 경계가 나날이 심각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급기야 남녀가 서로를 생존에 해로운 존재로 인식함으로써, 남과 여로 양극화되는 ‘성(性) 양극화’, ‘젠더 전쟁’이라 불릴 만큼 남녀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실제로 2018년 7월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가 20~50대 성인 남녀를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0.7%가 남녀 대립이 '심각하다'고 답변하였다.

68.2%는 여성 혐오와 남성 혐오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구조걱 문제라고 인식하였다.


같은 시기 리얼미터 여론조사기관이 발표한 ‘공동체 갈등 관련 조사’에서도 특히 20대가 바라본 가장 심각한 갈등 1위는 성 갈등(57%)이었다. 구세대와 달리 양성평등 관계 속에서 성장한 20대·30대 남성들은 각각 76%, 66%가 페미니즘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응답하면서 역차별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동안 한국 사회의 가장 큰 갈등 요인이었던 이념갈등과 세대갈등, 노사갈등을 마침내 남녀갈등이 앞지르게 된 것이다.

필자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전개되는 페미니즘의 양상과 폐해를 이렇게 정리해본다.1)


1. 남녀의 상생과 연대가 아닌 극단적 대립과 반목으로 나아간다.

2. 여성의 생물학적 기능(임신·출산)을 극도로 혐오하므로써 ‘젠더 중립성’(=성중립성, gender neutrality)으로 미화된 성별 해체를 지향한다.

3. 성소수자 세력(LGBTQIA)에 동조함으로써 양성평등(sex equality)이 아닌 젠더 평등(=성평등, gender equality)을 추구한다.

4. 이성애적 결혼을 비판하고 동성애적 파트너십을 옹호함으로써 전통적 결혼 및 가족제도에 적대적이다.

5. 일부일처제(monogamy)에 부정적이고 폴리 아모리(polyamory, 복수연애)에 우호적인 자유연애주의를 확산시킨다.

6. 소수의 엘리트 페미니스트 중심으로 정치세력화·이익집단화함으로써 전체 여성의 실질적 권익을 대변하지 못하고 사회 약자에 처한 소외계층 여성을 외면한다.


이 세태를 바라보면서 우리 사회에 진정한 의미에서 여성의 존엄성을 회복시키고 인류문명에 기여하는 건전한 여성운동이 정착하지 않고, 전통적 성윤리와 가정공동체를 해체시키는 퇴락한 이데올로기가 횡행하는 현실이 참으로 유감스럽다. 특별히 1970년대 서구세계에서 성행했던 급진적 페미니즘과 젠더 이데올로기의 사상적 혼합물인 젠더 페미니즘이 21세기 대한민국을 강타한 현실에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서구 사회에서는 지난 세기에 급진적 페미니즘에 이어 젠더주의가 순차적으로 영향을 끼쳤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거의 동시에 유입된 양대 시대사조가 반세기 지나 뒤늦게 우리나라 여성들을 격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 사회에서는 페미니즘이 파행적으로 발전하게 되었는가? 한국의 페미니즘은 1987년 창립된 ‘한국여성단체연합’(이하 ‘한국여연’)을 중심으로 현실 정치에로의 진입에 주력해 왔는데, ‘한국여연’이 그동안 관심을 기울였던 주요 활동은 여성인권 3법 등 젠더 의제의 법제화, 낙태죄 폐지, 성주류화 정책, 성평등 개헌운동, 여성정치세력화 등이다. 그러다가 페미니즘 논란이 크게 일어난 발단은, 2015년 여성 혐오에 대항한다는 명분으로 만들어진 인터넷 커뮤니티 ‘메갈리아’(Megalia)와 여기서 파생된 극단적 남성 혐오 카페 ‘워마드’(Womad)에 엘리트 페미니스트들이 긴밀하게 관여하면서부터이다.




특별히 21대 총선은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즘 열풍 후 처음 치러지는 선거이므로 새로 탄생한 ‘여성의 당’이 주목할 만한데, ‘여성의 당’은 우려했던 대로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선정적인 페미니즘 이슈에만 영합하는 공약들을 발표하였다. 이로 보건대, 전체 여성들의 공동선(共同善)보다는 자신들의 권력과 이익추구를 위해 움직이는 권력지향적·이익집단적 페미니스트들의 활동이 오늘의 파행적인 페미니즘 현상을 만들어냈다고 볼 수도 있겠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들이 남성 혐오를 정당화하기 위해 페미니즘을 표방함으로써 페미니즘의 보편적 이론마저 변질시켜 버린 일이다. 사실 남성 중심적 체제에서 고통당하는 여성들의 인권신장 운동에서 출발한 초기 건전한 페미니즘은 젠더 페미니즘에 이르러 본 궤도에서 벗어나면서 외면당하게 되었다. 급기야 젠더 페미니즘은 자가당착에 빠짐으로써, 새로운 대안을 모색해야만 하는 곤궁한 상황이다. 그런데 오늘날 대한민국의 페미니스트들이 지난 세기의 쇠락한 시대사조를 21세기 대한민국에 확산시키고 있으니 실로 어처구니없는 상황인 것이다.

이제 21세기 한국 사회는 남녀 간에 대결과 혐오를 부추김으로 ‘성별 해체-성윤리 해체-가정 해체’로 나아가는 젠더 페미니즘에서 벗어나서, 남녀가 서로 공존·상생하는 길로 나아가야 한다. 여성을 억압하는 남성중심주의, 남성을 억압하는 여성중심주의를 내려놓고, 남성과 여성 모두의 존엄성이 회복된 공동체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므로 21세기 대한민국의 시대상황에 부합하는 새로운 여성운동의 실천, 곧 남녀가 서로를 적이 아닌 연대·협력하는 동반자로서 인정하고 건전한 성윤리와 가정공동체를 구축하며 양성평등을 중심부에 둔 여성운동, 권력지향적·이익집단적 페미니스트 중심에서 벗어나 극심한 성 양극화 문제에 대한 진정성 있는 해법을 제시하는 여성운동이 절실히 요청된다.


남성 중심적인 위계구조의 진정성 있는 변화가 시급한 한국 교회

그런데 남성과 여성의 양성평등을 실현함에 있어서 필자는 한국 교회 안에서 여성이 충분히 존중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문제제기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본다. 기독교 복음의 전래로 말미암아 여성의 인권이 획기적으로 변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여성의 권리와 위상이 크게 진일보한 일반 사회와 대비되면서 양성평등 사안은 한국 교회에 대한 뼈아픈 질책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특히 젠더 페미니즘 세력들이 한국 교회 안에서 여성들은 예나 지금이나 양성평등의 사각지대에 놓여있어 피눈물을 흘린다고 신랄하게 비난하면서 교회 여성들을 충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여신도들은 남신도보다 수적으로 월등히 많음에도 불구하고, 설교와 교육, 인재양성, 정책결정 같은 교회의 중심적 리더십에서 배제된 가운데 주로 교회의 부수적인 일을 맡고 있다. 소수 교단에서만이 여성의 목사 안수와 장로 임직이 허용되지만, 남성 중심적인 위계구조 속에서 여성 사역자들은 여전히 남성 사역자들을 보조하는 역할로 제한된다. 안타까운 일은 남신도가 여신도를 하대하는 것도 유감스럽지만, 여신도 스스로 자신을 비하하는 현실이다. 현재 한국 교회 안에서 지적으로 우수한 여신도들이 남녀차별의 장벽 때문에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감당할 수 없어 절망하거나, 심지어 교회를 떠나는 불상사도 일어나고 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적극적으로 순종하겠다는 교회 여성들의 헌신이 너무나 아깝게 사장되고 있는 것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문제는, 남성 목회자들에 의해 일어나는 성범죄가 한국 교회 차원에서 근본적 성찰과 쇄신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일이다. 목회자들의 성폭력은 대부분의 경우 은폐·축소되는 가운데 이에 대한 징계 규정조차 마련되지 않은 현실인데, 이것이 얼마나 한국 교회의 전도 및 선교사역을 후퇴시키고 얼마나 많은 영혼을 실족시키는지 모른다. 물론 이것을 목회자 개인의 일탈로 볼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당회와 노회, 총회의 책임마저 면책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문제들에 대해 한국 교회가 특단의 대책을 강구함으로써 점점 더 거세게 교회 안으로 밀려들어 오는 젠더 페미니즘에 응답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현재 상당수 교회 여성들(특히 학교에서 인권과 성평등, 페미니즘 교육을 받고 성장한 20~30대 여성들)이 젠더 페미니즘에 영합하여 남성 중심적인 위계질서를 강하게 성토하고 있는데, 이 추세는 나날이 심화될 것으로 예견된다. 일부 교회들에서는 여신도들의 요구에 따라 페미니즘 강좌가 열리기도 하는데, 초빙된 외부 강사들이 대부분 젠더 페미니스트들이라는 매우 우려스러운 이야기도 전해 듣고 있다. 최근에 한 여성 신학자는 ‘교회에서 주입하는 것이 기독교적 가치관이 아닌 남성 중심적 이데올로기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다’고 폭로하면서, ‘목사님의 성차별적 설교도 기독교 가치관이 아닌 자기 가치관에 따라 말하는구나’라고 생각하라고 냉소적으로 말하고 있다.

2019년 12월 우파진영에서 창립된 ‘바른인권여성연합’(이하 바른인연)은 “가정과 사회에서 여성의 정당한 권리를 보장하는 진정한 여성운동을 시작한다”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했는데, 필자는 매우 열악한 교회에서의 여성의 인권에도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 줄 것을 간곡히 당부한다. 왜냐하면 이 문제에 대한 올바른 해결 방안과 대안 제시가 마련되지 못하면, 피해의식을 느끼는 교회 여성들 중에 변종 페미니스트들이 양산되는 현 사태를 결코 막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크리스천 여성들의 사명을 일깨울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바른인연’은 정치세력화·이익집단화한 ‘한국여연’의 잘못된 전철을 반면교사로 삼아 전체 여성들(특히 소외계층 여성들)의 실질적 권익을 대변하는 진정성 있는 단체가 되어야 할 것이다.

교인의 60~70%가 여성이라면, 설교와 교육, 인재양성, 정책결정 등에서 여성의 견해와 입장이 수렴되어야 비로소 한국 교회가 정의롭고 온전한 공동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여성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한국 교회의 패러다임을 개혁하는 일이 불가피하다. 예수님께서 그러셨듯이 한국 교회가 여성들을 존귀하게 여긴다면, 이들은 생명을 바쳐 하나님 사역에 헌신할 것이다. 신학계와 목회현장에 여성의 존엄성이 뿌리내려야 한국 교회가 젠더 페미니즘 세력을 향해 당당하게 비판의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교회 여성들이 자존감을 갖고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소신있게 감당할 때, 한국 교회가 건강하게 성장할 것이다. 그러면 초대 교회 때처럼 한국 교회 안에 다시금 헌신적인 여성들이 많이 배출될 것이다. 그러면 기독교를 배제함으로 일명 ‘악(惡)의 연합’을 이룬 안티(anti) 기독교 세력이 교회와 성도를 총공격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상황 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흥왕하고 교회가 든든히 서게 될 것이다.


여성에 대한 성경적 이해의 새로운 정립과 크리스천 여성의 사명

이 지점에서 우리는 크리스천 여성들의 책임적 역할과 사명이 문제 해결의 중요한 관건이라는 사실을 직감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젠더 페미니스트들이 주축이 되어 이 세대를 전복시키려는 위기의 시대에, 패륜적 성혁명은 인류역사상 매우 이례적으로 ‘여성 주도의 혁명’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류의 미래를 거시적으로 내다보는 혜안(慧眼)과 인류의 안녕(安寧)을 최우선적 가치로 생각하는 사려 깊은 책임감, 건강한 가정공동체를 구축하려는 깨어있는 여성들의 헌신적 사역이 그 어느 때보다 이 시대에 절실히 요청된다.

그런데 크리스천 여성들의 사명을 견고하게 다지기 전에 선행되어야 할 과제가 있는데, 이는 다름 아닌 성경으로 돌아가 여성에 대한 왜곡된 이해를 바로잡고 올바른 여성관을 새롭게 정립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남성 중심적인 위계질서가 공고하게 구축됨에 있어서 성경을 왜곡되게 번역하고 편협하게 해석한 기독교 신학자들의 부정적 영향을 결코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유력한 신학자들은 여성이 열등한 존재로 창조되었다고 주장하거나, 인류를 타락시킨 죄인으로 정죄하거나, 생리적 이유로 불결하다고 혐오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매우 의아한 것은,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죄를 모두 사하시고 구원을 이루어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성을 원죄(原罪)의 근원으로 보는 관점이 유효한 현실이다.

무엇보다 치명적인 것은, 원어 성경에 대한 왜곡된 번역과 편협한 해석을 근거로 여성의 성직(聖職)과 공직(公職)을 반대할 뿐만 아니라, 여성차별적인 위계질서를 정당화하는 일이다. 헬라어 성경의 번역과 해석에 있어서 가장 대표적으로 문제시되는 구절은 “모든 성도가 교회에서 함과 같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그들에게는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고전 14:34) 말씀이다. 고린도전서 14장에서 주목할 것은,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34절)고 말씀했듯이 “그런즉 형제들아”(26절)라고 부르면서 남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잠잠할지니라”(30)고 바울 사도가 권고한 구절이 완전히 도외시된 일이다. 또한 동일한 헬라어 동사 ‘휘포타소’(ὑποτάσσω)가 남자에게는 ‘제재를 받다’(32절)로, 여자에게는 ‘복종하다’(34절)로 차별적으로 번역된 일이다. 더욱이 공동번역의 경우 원어에도 없는 ‘남자에게’가 첨부됨으로써, ‘여자들은 남자에게 복종해야 합니다’라고 오역되었다.

사실상 고전 14:34은 당시의 특수한 정황 속에서 남녀 그리스도인들의 단정한 자세를 권고한 말씀이다. 즉 고대 고린도 도시에 성행한 그리스 신화의 주신(酒神) 디오니소스(Dionysus)에 대한 제의로 인해 고린도 교회 안에는 열광주의에 빠져 무질서하게 방언과 예언을 하면서 예배를 방해했던 남녀 성도들이 있었는데, 이들에게 잠잠해야 할 때에 잠잠하라고 당부한 말씀이다. 그러면서 바울은 절제되지 않은 방언과 예언이 불신자들에게 “미친 짓으로 보이지 않겠느냐”(23절)고 반문하면서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므로”(33절) “모든 것을 품위있게 하고 질서있게 하라”(40절)고 권고한 것이다. 그런데 남성 신학자들은 이 구절을 남성 중심적인 세계관의 틀로 해석함으로써 성경 저자가 본래 말씀하려는 의미를 간과했다고 볼 수 있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이 바울 서신을 전체 성경 본문과의 연관성 속에서 이해하지 않고 몇 구절만을 뽑아 여성을 차별하는 근거로 삼아왔던 것이다. 특별히 바울이 ‘성차별주의자’로 오인되는 상황 속에서 우리는 사도가 여성을 죄의 근원으로 간주했던 유대교 전통에 맞서 남녀가 모두 하나님에게서 났으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차별이 없다고 선언한 말씀을 깊이 유념해야 할 것이다: “남자나 여자나 차별이 없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입니다”(갈 3:28). 그뿐만 아니라 바울이 얼마나 많은 여성들(루디아·뵈뵈·브리스가·유오디아·유니게 등)을 차별 없이 복음전파를 위한 사역자로 세워 동역했는가를 주목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여성을 결코 남성의 소유물 내지 성적인 욕구 대상으로 만들지 않으시고, 오히려 남성과 동일하게 귀중한 ‘하나님의 형상’(창 1:27)으로 창조하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셨기에 여성들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보호하시고 인격적으로 교제하셨으며 여성들을 남성 중심적인 체제로부터 자유케 하셨다. 남성 제자들과 달리 생명을 바쳐 주님을 따르고 전적으로 헌신했던 여인들이 그리스도 ‘부활의 첫 증인’(마 28:1-10; 막 16:1-8; 눅 24:1-12; 요 20:1-10)이 된 역사는, 하나님의 구속의 경륜 안에서 여성들에게 ‘새 시대’가 열렸음을 암시한다.


남녀가 공존·상생하는 공동체,

양성이 서로를 존귀하게 여기는 ‘하나님 나라’를 지향하며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남성과 여성이 서로 어떤 관계를 맺기를 원하시는가? 성경에 입각하여 남성과 여성의 바람직한 관계 정립을 위한 지향점은 과연 무엇인가? 기독교 복음주의 운동의 거장 존 스토트(J. Stott)는 ‘하나님은 남녀가 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서로에게 어떤 역할을 해주기를 바라시는가?’라는 질문은 기독교 교회에 긴급한 과제를 던진다고 역설한 바 있다. 그러면서 그는 여성들이 성별 때문에 제도적·사회적 불의로 고통을 받는다는 확신에서 페미니즘이 태동했다고 말하면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여성들의 정의에 대한 외침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필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복음을 분별할 수 있는 기준, 특히 남성과 여성의 바람직한 관계 정립을 위한 올바른 성경해석의 틀은 바로 ‘하나님 나라’(마 4:17; 막 1:15)라고 확신한다. 예수님의 모든 말씀과 사역의 핵심인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는 세계,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이 실현되는 세계인데, 즉 이것이 모든 것을 해석하는 기준, 바람직한 남녀관계를 올바르게 분별할 수 있는 기준이다.‘하나님 나라’ 안에서 남성과 여성은 성별에 따라 명백히 구별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의 영 안에서 ‘하나’이다(갈 3:28). 이런 연유에서 남성과 여성은 서로 다른 성(性)의 가치와 존엄성을 훼손할 권리를 갖지 않으며, 어떤 성도 다른 성에 의해 그의 가치와 존엄성을 침해당할 수 없다. 남성과 여성은 서로를 차별하거나 멸시할 수 없고, 억압하거나 착취할 수 없다. 이를 침해하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남성과 여성에게 부여하신 하나님에 대한 모독행위라고 말할 수 있다.

성부·성자·성령 삼위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관계도 바람직한 남녀관계 정립을 위한 올바른 성경해석의 틀을 제공한다. 성부·성자·성령 하나님은 서로 함께 한 몸을 이루는 가운데 끊임없이 상호내주 하시면서 모든 것을 함께 나누고 사랑하며 모든 일을 함께 행하신다. 삼위 하나님이 서로 맺는 관계는 결코 명령과 복종의 지배관계가 아닌, 사랑과 사귐의 평등한 관계이다. 무한한 사랑의 영 안에서 서로 하나 됨을 이루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내적인 관계는 남성과 여성의 관계가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에 대한 올바른 지향점을 제시한다. 이는 곧 강압적 명령과 복종의 지배관계가 아니라, 각자의 인격적 고유성과 독자성을 존중하는 사랑과 사귐의 평등한 관계이다.

21세기 한국 교회는 남성과 여성의 새로운 관계를 정립해야 할 중요한 전환점에 서 있다. 필자는 남녀 파트너십이 바람직한 남녀관계 정립에 있어서 가장 올바른 접근이라고 생각한다. 남녀는 모두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영적인 존재로서 서로 함께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서로 협력하여 창조세계를 돌보는 청지기적 사명을 감당하며, 자신의 주체성을 상실하지 않고 상호 간에 인격적 관계를 맺으며, 서로 다름을 존중하면서 유기적 통일성을 이루는 동역자이자 서로 나란히 코이노니아(koinonia)를 나누면서 살아가는 파트너이다.

특별히 우리가 살아가는 이 마지막 시대에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주겠으니 그들도 예언을 할 것이요”(행 2:18; cf. 욜 2:29)라고 말씀하듯이, 하나님께서는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동일한 계명을 주셨고, 예수님의 구원과 성령의 은사를 주셨으며, ‘하나님 나라’의 상속을 위해 남성과 여성 모두를 부르셨다. 남성과 여성은 주 안에서 서로의 존재로 인해 지음을 받고 결국 모두 하나님에게서 생겨남으로써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구축해가는 동역자인 것이다.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이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 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음이라. 그리고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고전 11:12).





1) 곽혜원, “젠더 페미니즘, 남녀의 상생 아닌 극단적 반목과 대립 부추겨”, 「국민일보」(2020.02.18).

2)  “교회가 주입하는 것이 기독교적 가치관 아닌 ‘남성 중심적 이데올로기’라는 사실 알리고 싶다”, 「뉴스앤조이」(2020.01.28).

3) 김세윤, 『그리스도가 구속한 여성』(서울: 두란노, 2016), 46.

4) 정용석, 『기독교 여성사』(서울: 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2017), 61-65.

5) 곽혜원, 『현대세계의 위기와 하나님의 나라』(서울: 한들, 2008), 322.

6) 곽혜원, 『삼위일체론 전통과 실천적 삶』(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9), 185-195.

7) 칼 맑스(K. Marx)는 “성스러운 가족(성부ㆍ성자ㆍ성령)의 비밀은 지상의 가족이다. 전자를 사라지게 하려면, 이론과 실제에서 후자가 먼저 파괴되어야 한다... 일부일처제는 촌충(기생충)과 같다”는 어록을 남겼다.

8) 강호숙, 『성경적 페미니즘과 여성 리더십』(서울: 새물결플러스, 2020), 462-466.



곽혜원 박사

이화여대 사회학과를 졸업했고, 한세대와 장로회신학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했으며, 독일 튀빙엔(T bingen)대학에서 조직신학 박사학위(Dr.thel.)를 받았다. 현재 21세기 교회와 신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하는 연구 공동체 <21세기교회와 신학 포럼>을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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