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패밀리] 자녀를 향한 참 사랑


어느 날 밤, 20세 가량 되는 앳된 목소리의 한 자매가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어렵사리 꺼낸 말은 “하나님은 과연 어떤 분이신가요?”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쉽게 답하기 어려운 주제이기에 “왜 그러한 질문을 하세요?” 하고 되물었을 때, 자매의 답변은 이러했습니다. 교회에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말씀은 많이 들었지만 도무지 하나님이 사랑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차갑고 무서운 분으로 느껴질 뿐, 나를 기뻐하시며 나를 따스하게 사랑하시는 분으로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고백이었습니다.

“단 한번이라도 좋으니 하나님이 나를 진정 사랑하신다는 것이 마음에 와 닿을 수만 있다면 좋겠어요.”하는 절규와도 같은 호소였습니다. 사연을 들어보니 부모님은 교회를 열심히 출석하시는 장로님, 권사님이시지만, 그 부모로부터 따스한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냉정하고 무관심하고 야단치는 부모이었기에, 그 딸은 육신의 부모를 통해 하나님 아버지도 냉정하고 무관심하고 야단치는 분이라는 ‘왜곡된 하나님 상’을 소유하게 된 것입니다.


부모도 사랑을 배워야 합니다

사랑은 감정이 아닙니다. 사랑은 나의 인격이고 성품입니다. 사랑은 대상의 문제가 아닙니다. 즉 네가 사랑스러워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네가 사랑스럽지 못해서 사랑할 수 없다는 것도 틀린 이야기입니다. 사랑은 나의 인격이고 성품이기 때문에 네가 사랑스럽든 사랑스럽지 않든 간에 사랑은 흘러나와서 너를 살리고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물론 부모 자신이 어린 시절 흠뻑 자기 부모로부터 건강한 사랑을 체험하고 배우며 살았다면 저절로 그러한 사랑이 흘러나와 실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 자신이 어린 시절 건강하지 못한 사랑을 경험했거나 자기 부모로부터 사랑을 충분히 배우지 못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결과 자기 자녀들에게 또 사랑을 충분히 주지 못하거나 잘못된 사랑을 주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참으로 두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을 배우고 또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6-8)” 예수님의 사랑은 우리의 죄, 연약함, 실수 등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사랑하신 참 사랑인 것입니다.


자녀는 부모로부터 흠뻑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부모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자녀에게 사랑을 흠뻑 넣어 주어야 합니다. 충분한 사랑을 받은 자녀는 자신을 사랑할 줄 알고, 그 사랑으로 다른 사람 또한 사랑할 줄 알게 됩니다. 그러나 사랑받지 못한 자녀는 늘 사랑에 목마를 뿐 아니라,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어렵고, 그 결과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도 어렵게 됩니다. 사랑받지 못한 자녀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도 확신하기가 어렵습니다. 따라서 자녀가 부모의 사랑을 받으려고 애쓰고 노력하도록 해서는 안 됩니다. 사랑에 목마름을 느끼도록 해서도 안 됩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부모가 나를 사랑한다는 신뢰를 갖게 해 주어야 합니다. 나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라는 것을 확신하도록 흠뻑 사랑을 전달하는 부모가 되시기 바랍니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신들이 자녀를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녀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도 많습니다. 사랑에는 건강한 사랑과 건강하지 못한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애착 또는 집착은 진정한 의미의 사랑이 아닙니다. 소유하고 지배하는 것도 사랑이 아닙니다. 강요하고 조종하고 통제하는 것도 사랑이 아닙니다. 이러한 잘못된 사랑은 자녀로 하여금 사랑에 대한 혼돈을 경험하게 합니다. 건강하지 못한 사랑은 자녀의 정신을 건강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부모 여러분, 당신의 자녀 사랑은 어떤지 한 번 점검해 보십시오.



이러한 사랑은 잘못된 사랑입니다

1) 과잉보호 사랑

과잉보호는 자녀를 성장시키지 못합니다. 과잉보호는 자녀를 나약하고 무기력한 존재로 만듭니다. 과잉보호를 받은 자녀는 내가 무능하기 때문에 부모가 나를 믿지 않는다고 느낍니다. 자녀는 때로 실수를 통해 배우기도 해야 하는데, 과잉보호는 실수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 것입니다. 어차피 인생은 모험과 어려움으로 가득 차 있기 마련입니다. 부모가 평생 따라 다니며 어려움을 막아 줄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자녀를 진정 사랑한다면 어려움을 스스로 극복하도록 강하게 키워야 합니다. 자녀를 평탄하고 안이한 길로 가게 하기보다는 고난에 직면하고 이길 줄 아는 강한 자녀로 양육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밥을 먹여 주기보다는 스스로 먹도록 기회를 준다든가, 옷을 입혀 주기보다는 스스로 갈아입도록 기다려 주고, 무거운 것을 들어주기보다는 스스로 들어보게 하거나, 숙제를 지나치게 도와주기보다는 스스로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자녀를 성장시키는 사랑입니다. 자녀를 부모만 의존하는 나약한 존재로 키우지 마십시오. 인생의 과제를 스스로 풀어 나가는 강한 자녀로 키우십시오. 그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2) 권위 없는 사랑

권위 없는 부모는 자녀를 망칩니다. 부모의 권위는 하나님 권위를 대신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의 권위란 자녀를 윽박지르거나 무섭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요즈음 자녀에게 절절 매거나 자녀에게 ‘안 돼’ 라는 말을 못하는 부모가 많습니다. 그러나 자녀에게서 부모로서의 권위와 존경을 받아내지 못하면 자녀는 나중에 감당 못할 말썽쟁이가 됩니다. 성경적 부모는 하나님의 거룩함과 공의와 진리를 대신하여 자녀를 인도해야 합니다. 또한 자녀는 부모에게 순종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그것은 억지로 강요하는 순종이 아니라 자녀가 부모의 사랑과 권위에 감동하여 자발적으로 반응하는 순종을 말합니다. 또한 순종은 자녀를 복 받게 하는 영적 법칙이라고 성경에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에베소서 6 :1-3)’

이처럼 자녀가 부모를 진심으로 공경할 때 번영과 장수의 약속된 축복이 있음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3) 편애

자녀를 편애하는 것은 사랑받지 못하는 자녀뿐 아니라 편애 받는 자녀에게도 해롭습니다. 편애 받는 자녀는 자신밖에 모르는 이기적이고 자만한 사람이 되기 쉽고, 반면에 사랑받지 못한 자녀는 거절감과 열등감과 분노의 상처를 얻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 부모는 자신도 모르게 어느 한 자녀를 더 사랑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낳지 않은 자녀를 키우는 경우에도 본능적인 사랑이 생기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죄 된 모습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혹시 마음은 그렇더라도 공평한 사랑이 전달되도록 노력하십시오. 이를 위해서 때로는 사랑하는 마음이 덜 가는 자녀에게 오히려 의도적으로 더욱 친근하게 사랑을 표현해 보십시오. 그러면 어느새 따스한 사랑의 마음이 회복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사랑의 마음이지요. 편애는 극복될 수 있습니다. 편애가 모든 자녀에게 해롭다는 것을 명심하면서 자녀 모두에게 골고루 공평한 사랑을 표현하도록 노력해 보십시오.


4) 완벽주의 사랑

완벽주의 부모는 자녀에게 “그것은 이러해야 합니다” “더욱 잘 해야 합니다”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조금만 더 잘하면 좋겠습니다” 하는 끊임없는 요구를 합니다. 이미 달성한 성과에 대해서는 격려와 인정을 표현하지 않습니다. 혹시 표현하더라도 아주 슬쩍 표현하고 맙니다. 크게 강조해서 전달하는 것은 “더욱 잘하라”는 표현입니다. 그래서 완벽주의 부모는 아무리 잘 해도 칭찬과 만족을 전달하지 않습니다. 과잉 기대를 가지고 더욱 잘해서 최고의 성과를 받으라고 계속해서 요구하고 기대하는 것이 완벽주의입니다.

그러한 부모 밑에서 자란 자녀는 부모의 만족과 인정, 칭찬과 격려에 굶주려 있습니다. 처음에는 자신도 최선을 다해 부모의 기대에 다다르려고 노력하지만, 점점 힘에 겨워합니다. 마음속으로 ‘나는 안 돼’ ‘나는 항상 이 모양이야’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은 불가능해’라고 생각하다가 결국에는 자포자기에 빠지고 맙니다. 그리고 분노를 느끼기도 합니다. 끊임없는 기대와 요구보다는 자녀의 작은 성취에도 아끼지 말고 칭찬과 격려를 표현하는 부모가 되십시오.


5) 조건부 사랑

조건부 사랑(conditional love)이란 “만일 네가 이러이러하면 엄마가 너를 사랑할 거야”라는 표현처럼, 사랑을 베풀기 전에 자녀에게 어떤 조건이나 대가를 요구하는 부모의 태도를 말합니다. 자녀가 사랑스러운 일을 해야만 사랑하겠다는 행위 위주의 사랑이기도 합니다. 자녀의 자격과 조건과 행위와 성적 등에 따라 사랑을 줄 수도 있고, 사랑을 걷어갈 수도 있다는 태도입니다.

그런데 흔히 우리 부모들은 자신도 모르게 조건부 사랑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말 잘 들어야 엄마가 예쁘다 그럴 거야” “착해야 아빠 딸(아들)이지” “말 안 들으면 엄마가 밉다고 할 거야” 같은 표현입니다. 그렇게 되면 자녀는 자기가 사랑받기 위해서는 자격을 갖추어야 하고, 힘써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자격이나 행위나 성취와 상관없이 우리를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시는 조건 없는 사랑입니다. 우리도 그와 같이 자녀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전달해야 합니다. 조건 없는 사랑을 받은 자녀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부모가 나를 사랑한다는 확신 가운데 두려움 없이 밝게 성장하게 됩니다.


 

참사랑을 전달하는 몇 가지 구체적 방법

그러면 이제 조건 없는 사랑을 구체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몇 가지 태도와 방법을 살펴봅시다.

1) 자녀를 보면 활짝 웃어주세요

누군가 나를 보고 웃어준다는 것은 내 존재가 환영받고 사랑받는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줍니다. 특히 부모가 나를 볼 때마다 활짝 웃으며 기뻐해 준다면, 자녀는 조건 없는 사랑을 경험합니다. 내 존재 그대로 부모에게 기쁨을 주는 사람이라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반대로 누군가 나를 볼 때마다 얼굴을 찡그린다면 자녀는 존재의 무가치감을 느끼게 됩니다. 부모의 불만스러운 표정 속에서 자녀는 눈치를 보게 됩니다. ‘뭔가 내가 또 잘못했구나’ ‘나를 싫어하나 보다’ ‘나는 자격 미달이다’ 하는 부정적 메시지를 전달받게 됩니다. 은근히 ‘너는 못 마땅해’, ‘이래야만 너를 사랑할 거야’ 라는 조건부 메시지를 주면서 사랑이라는 대가로 아이를 조정하는 셈입니다. 그러면 아이는 은근히 부모의 눈치를 보게 됩니다. 어린 자녀는 부모의 사랑을 받으려고 안간힘을 쓰게 됩니다. 노력해도 부모의 사랑이 오지 않을 때 자녀는 부모로부터 거절감이라는 상처를 입게 됩니다. 이것은 어린 자녀에게는 형벌과도 같습니다.

자녀들을 보면 활짝 웃어 주세요. 자녀를 보고 기뻐하세요. 자녀를 만나면 환영해 주세요. 이것이 사랑과 용납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너의 존재 자체가 나에게는 기쁨이다’라는 조건 없는 사랑의 메시지를 전달해 주는 것입니다. 하루에 몇 번이라도, 아이가 옷을 더럽혀 왔을 때도, 성적이 떨어졌을 때도, 엄마 마음이 불편할 때도 자녀를 보면 무조건적 웃음을 선물로 제공해 보십시오. 그러면 자녀는 놀랍게도 밝고 건강하게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2) “참 귀하구나” 라는 말을 자주 사용해 주세요

사랑은 반드시 표현되고 전달되어야 합니다. 전달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마치 종이 울려야 종의 역할을 감당하듯이 사랑은 표현되어야 그 효과가 발휘됩니다. 마음속에 사랑을 가지고 있어도 표현하지 않으면 자녀는 사랑을 느끼지 못합니다. 조건 없는 사랑을 말로 표현하십시오. 예를 들면 “너는 참 귀하구나” “어이구 귀해라” “정말 사랑스럽다” “엄마는 너만 보면 좋다” “아빠가 피곤했는데 우리 아들(딸)을 보니 피곤이 싹 가시는구나” “요게 없었으면 어쩔 뻔했을까?” “천만금을 준다고 해도 너랑 바꾸나 봐라” 하는 표현 속에는 부모가 어떠한 일이 있어도 나를 사랑한다는 귀한 메시지가 들어 있습니다.

반대로 “저게 왜 태어났는지 몰라” “아이 지겨워” “못 살어 못 살어” “아휴 저 웬수!” “누굴 닮아 저렇게 못생겼니?” “사랑할 구석이 있어야 사랑하지?” “저리 가라, 꼴도 보기 싫다” “정말 마음에 안 든다” “정말 실망스럽다”하는 표현 속에는 거절감이 포함된 조건부 사랑이 들어 있습니다. 부모의 무심코 던진 말들이 자녀에게는 존재의 무가치감을 준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자녀를 볼 때마다 조건 없는 사랑과 축복의 표현을 전달하십시오.


3) 자녀가 실수했을 때 “괜찮다”라고 꼭 말해 주세요

많은 부모들이 자녀의 실수를 용납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를 테면 자녀가 컵을 깨뜨렸을 때, “너 또 실수했구나” “왜 그렇게 부주의하니” “엄마가 조심하라고 그랬지”하고 무심코 던지는 말들에서 자녀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감을 느끼게 됩니다. 실수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실수는 배움의 기회이기도 합니다. 실수를 두려워하면 발전이 없습니다. 오히려 실수를 감행할 때 발전과 성장이 있습니다. 따라서 자녀가 실수했을 때에도 사랑과 용납을 표현하면 자녀는 두려움 없이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는(risk taking) 사람으로 건강하게 자라게 됩니다.

자녀가 실수하거나 실패했을 때 “괜찮다” “다치지 않았니?” “사람은 누구나 실수한단다” “실수를 겁내지 마라” “엄마도 실수한단다” “아빠도 예전에 성적이 떨어진 적이 있었단다” 하고 말하십시오. 자녀는 처음에는 놀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표현의 내용 속에서 부모의 조건 없는 사랑과 용납을 경험하고는 자녀는 앞으로 자신의 실수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실수까지도 용납하는 넉넉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4) “사랑해” 쪽지를 자주 전달하세요

사랑의 표현은 날마다 필요합니다. 어제뿐 아니라, 오늘도 부모의 사랑은 자녀에게 표현되고 전달되어야 합니다. 우리 자녀들도 비록 어릴지라도 생활 속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때마다 용기를 잃고 좌절하기도 합니다. 특히 십대의 자녀는 친구와의 관계와 성적 등으로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습니다. 그때 부모의 “사랑해” 쪽지는 큰 용기와 격려를 갖게 해 줍니다.

e-메일과 문자로 사랑의 메시지를 보내기도 하고, 때로는 포스트잇에 적어서 자녀의 책상 위에 붙여 놓으세요. “많이 힘들지?” “엄마가 너를 사랑한다는 것을 잊지 마” “아빠가 항상 네 곁에 있음을 기억해라” “우리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너를 사랑한단다” “엄마, 아빠는 언제나 네 편이다”라는 쪽지를 전달하십시오. 그것이 조건 없는 사랑의 표현입니다. 


5) 만날 때마다 품에 잠시 안아 주세요

자녀를 볼 때마다 부모의 품에 안아 주십시오. 부모의 넓은 품을 아끼지 마십시오. 부모의 따스한 포옹을 통해 자녀는 많은 위로와 사랑을 체온과 피부로 느끼게 됩니다. 엄마의 따스한 품, 아빠의 넓은 가슴 속에 안길 때 자녀는 조건 없는 사랑과 용납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것이 포옹의 마력이기도 합니다.  

물론 포옹하면서 “사랑해”라는 표현을 함께하면 효과는 더욱 큽니다. 책상에 앉아 공부하고 있는 자녀에게 다가가 “힘들지?” 하고 말하면서 어깨를 감싸준다면, “열심히 공부해라” 하고 말하는 것보다 몇 배나 강력한 지지와 격려를 줍니다. 자녀를 조건 없는 사랑으로 포옹해 주는 습관을 가지세요. 그 효과는 실로 놀랍습니다. 


6) 자녀와의 데이트 시간을 가지십시오

자녀와의 데이트는 관계 회복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고 싶어 합니다. 자녀를 진정 사랑하는 부모라면 아무리 바빠도 자녀와의 데이트 시간을 만들 수 있습니다. 흔히 자녀는 ‘우리 엄마, 아빠는 나와의 시간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아’ 하고 생각하곤 합니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녀를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막상 시간을 내어서 자녀와 대화하며 데이트할 시간은 갖지 않기 때문입니다. 특히 아빠는 “나는 너희들을 위해서 뼈 빠지게 일하고 있다”하고 말하면서도 막상 사랑하는 자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은 소중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어떤 아빠는 자녀와 함께 보내는 시간은 쓸데없이 낭비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너 시간 좀 낼 수 있니? 아빠가 밖에서 만나고 싶은데….” “어디서 만날까?” “학원 앞에서 아빠가 기다릴게 나하고 데이트 좀 하자” 하고 자녀에게 데이트를 신청해 보십시오. 자녀가 좋아하는 장소를 택하십시오. 시끄러운 곳이어도 좋습니다. 그냥 만나서 웃으며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입니다. 그때 “공부 잘하고 있니?” 라는 말은 금물입니다. 오히려 자녀의 친구 이야기나, 고민거리를 들어만 주십시오. 

설교와 교훈보다는 자녀의 이야기를 열심히 들어 주는 것이 진정한 데이트입니다. 부모에게 쓸데없는 것 같은 이야기도 자녀에게는 중요한 이야기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아빠가 바쁜 중에도 시간을 일부러 내어서 나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자녀는 아빠의 사랑과 용납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자녀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도록 조심 하십시오

어린 자녀는 부모가 야단칠 때, 여러 가지 상처를 받기가 쉽습니다. 훈계를 받으며 자녀는 마음속으로 잘못된 생각을 갖기가 쉽습니다. 이를테면 ‘엄마, 아빠는 나를 싫어하시는 구나’ ‘나는 왜 이렇게 자꾸 잘못을 저지르는 것일까’ ‘나는 형편없는 아이야’ ‘나같이 나쁜 애는 언젠가 나쁜 벌을 받고 말거야’ 등의 왜곡된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부모는 자녀의 마음에 지나친 죄의식이나 낮은 자존감의 상처가 생기기 않도록 조심하여야 합니다. 훈계는 벌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살다가 고난과 어려움을 만났을 때도 하나님은 벌이나 재앙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는 확신만 있으면 고난은 너끈히 이겨낼 수 있습니다. 모든 고난은 우리에게 오히려 유익의 결과를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예레미야 29:11)

따라서 자녀를 훈계할 때에 어떠한 일이 있어도 벌 받는 것으로 느껴지지 않도록, 오히려 부모의 사랑으로 느껴지도록 유의하십시오.

자녀는 결국 부모의 삶을 보고 배운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이기복 교수

한동대학교 교수와 횃불트리니티 신학대학원 교수를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성경적 부모교실, 성경적 아내교실 등이 있다.

서울특별시 서초구 남부순환로 333길 20, 4층 산지빌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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