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 생명윤리 사상과 역사





1. 생명윤리와 의료윤리

생명윤리와 의료윤리, 전문직윤리는 실천윤리에 속한 영역이다. 이중 생명윤리와 의료윤리를 합하여 생명의료윤리라고도 부르기도 하고 생명윤리로 통칭하기도 한다.


1) 생명윤리

생명윤리는 낙태를 포함하여 주로 첨단과학과 관련된 윤리문제들을 다룬다. 배아줄기세포연구, 유전자검사, 임상시험과 관련한 IRB(Institutional Review Board, 의학연구윤리심의위원회), 장기이식, 시험관아기, 대리모,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등이 여기에 속한다.


2) 의료윤리(임상윤리)

의료윤리는 임상에서 환자를 진료하며 발생하는 윤리적 갈등들을 다룬다. 연명의료결정, 한정된 자원의 배분 등이 여기에 속한다.


3) 전문직윤리(직능 윤리)

전문직윤리는 의사가 갖추어야 할 전문직 직업윤리를 말한다. 환자에게 진실말하기(truth disclosure), 환자의 사생활 보호(privacy), 환자의 비밀보호(confidentiality), 환자의 이익 우선하기, 이해상충(COI, Conflict of Interest)의 관리, 의료자원의 절약(distribution of resources) 등이 여기에 속한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 한다 고로 존재 한다”라고 했다. 올바른 생각은 존재의 이유가 된다. 지식이 생각을 낳고, 생각과 사상이 행동을 낳게 된다. 사람의 행동이 변하는 데에는 지적 단계, 인정 단계, 의지적 단계의 3가지 단계를 거친다. 지적단계는 여러 가지 정보를 취합하여 지식으로 습득하는 단계다. 이 단계를 거쳐 습득한 지식을 비교분석하고 종합하여 동의하고 받아들이는 인정(동의)단계를 거친다. 마지막으로 의지적 단계는 자신이 인정하고 동의하는 지식에 대해 의지적 결단을 내리고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나는 단계다. 생명의료윤리도 생명력을 가지려면 같은 과정들이 사람들 각자의 내면(內面)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지뢰밭을 지날 때 지뢰를 피하지 말고 지뢰를 찾으라’고 한다. 정확한 지뢰 위치를 알면 나를 위협하는 지뢰를 피해 갈수 있기 때문이다. 생명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일을 막기 위해서는 생명의료윤리에 대한 기초적이고 바른 지식을 공유하고 공부해야 한다. 그리고 체득한 지식을 바탕으로 생명의료에 관계된 사안들을 분석하고 판단해 보아야 한다. 이러한 지식을 바탕으로 받아들여진 것들에 대해서는 용기를 내어 의지적 결단으로 행동들을 변화 시켜 나가야한다. 생명(life)과 죽음(death), 고통(suffering), 가치(value)에 대한 교육과 깊은 성찰 시간을 거친 후 용기를 내어 결단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정보가 지혜를 통해 지식이 되고, 지식은 의지적 결단을 통해 행동을 변화시킨다. 살아있는 생명의료윤리는 배우고 인식하고 결단할 때 의미가 있다.

 


처음 생명윤리(bioethics)라는 말은 1970년 미국의 Van Rensselaer Potter교수가 자신의 논문

“생명윤리, 생존의 과학(Bioethics: The science of survival)”을 발표하며 사용되기 시작




2.생명의료윤리 사상

현대에서 사용되는 “생명윤리”는 1970년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학문적 체계를 잡아간다. 처음 생명윤리(bioethics)라는 말은 1970년 미국의 Van Rensselaer Potter교수가 자신의 논문 “생명윤리, 생존의 과학(Bioethics: The science of survival)”을 발표하며 사용되기 시작됐다. 의학과 철학과 윤리학을 모두 포함하는 생명윤리는 인류를 보호하기 위해 인간의 가치를 파악하고 존엄성을 지키려는 학문이다. 미국 케네디 연구소에서 발간한 1978년 판 <생명윤리 대사전>은 생명윤리의 정의를 “생명과 건강을 다루는 과학 분야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의 행위를 윤리 원칙과 가치에 비추어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했다. 이 정의에서 생명윤리 연구대상은 ‘생명과 건강을 다루는 과학 분야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의 행위’이고, 관점은‘윤리 원칙과 가치’이며, 연구방법은 ‘체계적인 연구’이다.

체계화된 학문으로 자리 잡지는 않았지만 고대로부터 생명윤리에 대한 사상과 규범들이 각 종교와 나라마다 문화를 이루고 전해져 왔다. 유대교와 천주교, 개신교에서는 십계명에 “살인하지 말라”라는 계명을 기초로 낙태와 안락사, 살인 등을 금지하고 있다. 이슬람은 무슬림선서를 통해 자비로운 살인(mercy killing)과 낙태를 포함한 살인을 금지하고 있으며, 불교는 살생을 금지하고 있다. 힌두교에서도 생명을 뜻하는 ‘아유르’와 지식, 철학을 의미하는 ‘베다’를 합친 ‘아유르 베다(Ayur Veda)’를 통해 환자의 죽음을 앞당겨서는 안 된다고 정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신라시대 화랑도에서 세속 오계(世俗五戒)중 살생유택(殺生有擇)을 정하고 살아있는 것을 죽일 때에는 가림이 있어야 한다는 생명윤리 사상을 담고 있다.



3. 생명윤리 교육의 필요성

과학의 발달과 함께 인간의 과학적 호기심과 성취욕구, 상업화는 인간 존엄성을 위협하고 있다. 만약 우리가 인간을 ‘물질(materials)’처럼 간주한다면 어떤 목적을 위해 도구로 사용될 수도 있다는 뜻이 된다.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 생명의 소중함이 훼손된다. 위험하고 잘못된 권리 주장과 거짓 인권이 목소리를 높인다. 예를 들어 인간의 배아가 인간의 본성(nature)을 가지고 있음에도 ‘인격체’임을 부정함으로써, 마땅히 보호받아야 할 배아를 파괴하는 행위를 아무런 가책 없이 정당화 하려고 한다. 인간을 단순한 세포덩어리나 유전자 덩어리로 바라볼 때, 인간은 다른 생물이나 다를 바 없는 하등한 생물로 취급된다. 이러한 사상에 치우치게 되면 낙태와 배아를 파괴하는 연구, 장기 매매, 인간 복제, 무분별한 유전자 조작 시도를 정당화하고 상업주의와 우생학을 받아들이는 비윤리적인 행위에 빠지게 된다. 인간이 자신을 위해 지켜야 할 인격을 스스로 무너뜨리게 된다.

어떤 상황에 대한 윤리적 판단을 내리려면 근본적인 물음에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이에 따라 실험의 목적, 방법론, 실험절차의 적용문제에 대한 대답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어떤 과학자가 인간배아를 연구할 때, 그가 사용하는 연구 방법의 방법론적 정확성이나 결과를 관찰하고 연구 결과를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를 묻는데 그쳐서는 안 되고, 인간의 배아가 무엇인지, 인간인지, 인격체로서 가치를 갖는지를 물어보아야 한다. 실재의 본성과 가치가 실험 방법 밖으로 벗어나 있으면 안 된다. 이러한 가치에 대한 인식은 교육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게 된다. 만일 도덕적 강제성을 가진 기준이 전혀 없다면, 우리의 선택은 오직 본능에만 좌우되어 혼란과 무질서, 착취와 고통이라는 부작용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생명윤리에 관한 지식을 배우고, 지식을 기초로 성찰하고 올바른 적응을 하는 것이 생명윤리 교육의 목적이다.



4. 생명윤리의 등장

고대로부터 여러 종교와 각 나라의 문화 사상 속에 담겨 있던 생명윤리 사상이 획기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였다. 독일 나치와 일본 731부대에서 시행된 인체실험이 생명윤리에 대한 중요성과 인간 존엄성에 대해 인류 전체가 공감대를 형성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그 이후 1970년대 터스키기 매독 연구사건이 결정적 계기가 된다.


1) 뉘른베르크 강령(The Nuremberg Code)

1947년 제정된 뉘른베르크 강령은 인류역사상 생명의 존엄함, 인권의 소중함에 대해 처음으로 명문화한 규정이다. 이 강령은 2차 대전 후 열린 전범재판인 뉘른베르크 재판(1946년10월부터 1947년8월)이후 같은 이름을 따서 뉘른베르크 강령이 되었다.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의 기본원칙을 담은 최초의 강령이다. 내용에는 인간피험자의 자발적 동의, 인간에게 이익이 되어야 할 것, 동물실험을 먼저 할 것, 불필요한 신체적, 정신적 고통이나 손상을 피할 것, 사망이나 신체장애가 발생하지 않을 것, 과학적인 자격을 갖춘 연구자가 실험을 할 것, 해로운 실험은 중단 할 것, 피험자가 어떤 실험에서도 도중에 그만둘 권리 등을 담고 있다.

이 강령이 만들어진 배경에는 2차 대전 중에 저질러진 인체실험이 있다. 독일군이 전쟁포로와 유대인 난민들을 대상으로 저질렀던 생체 실험 사건이다. 죽음의 천사(Angel of death)로 알려진 요셉 멩겔레, 칼 브란트 등의 독일 의사들은 유대인과 전쟁포로들 중 특히 쌍둥이를 이용하여 말라리아, 티푸스를 감염시킨 후 부검 실험, 남녀 쌍둥이 생식기 교체 실험, 독극물 주입 후 죽어가는 것을 관찰하는 실험, 무염분 음식투여, 저온 등의 극한 상황에서 죽어가는 생체 실험 등을 실시했다. 이들은 전쟁이 끝난 후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 ‘전쟁범죄 및 인류에 반한 죄’로 회부되었다. 재판에 회부 된 독일인 피고 23명중 20명이 의사면허를 가지고 있었다. 의사들이 생명에 대한 잘 못된 윤리의식을 가지고 있을 때 얼마나 무서운 일을 벌일 수 있는지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다. 뉘른베르크 강령의 탄생에는 이런 비극적인 배경이 있다.

뉘른베르크 강령은 그 후 1948년 12월 18일 국제연합(UN) 총회에서 세계인권선언(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된다. 이 후 생명과 인권을 위한 선언들이 제정되었고, 2005년 10월 19일 유네스코에서 국제사회 모든 국가가 함께 지키기로 약속한 ‘생명윤리와 인권에 관한 보편 선언(Universal Declaration on Bioethics and Human Rights)'으로 발전한다. 인류가 지켜나가야 할 생명윤리와 인권사항들을 모든 나라가 따르기로 한 것이다.

생명윤리란 현대의 생명과학 기술의 발전과 그 결과로 발생되는 문제들에 맞서서 인간의 생명과 인권을 지키려는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이 지켜지지 않을 때 내가 보호받지 못하고 더 나아가 인류 전체가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 까지 모든 건강과 생명에 관한 문제에 의사가 함께하게 된다. 사르트르는 인생을 B(Birth) 와 D(Death)사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B와 D사이의 "C" choice(선택)를 하면서 살아간다. 어떤 선택이 윤리적으로 올바른 선택인지를 알고 살아야 한다. 지식이 없이는 올바른 행동이나 판단을 내리기 힘들다. 잘못된 윤리의식을 가진 전문가는 사회적으로 큰 피해를 일으킬 개연성이 크기 때문이다.


2) 벨몬트 리포트(The belmont report)

1972년 충격적인 한 신문기사로 인해 미국전체가 발칵 뒤집힌 사건이 있었다. 미국 공중보건국에서 성병 조사를 담당하던 피터 벅스턴이 친구기자를 통해 1932년부터 40년 동안 미국정부가 가난한 흑인 600여명을 상대로 매독실험을 자행한 비윤리적인 사실을 폭로한 것이다. 터스키기 지역에 사는 가난하고 문맹인 흑인들에게 당신들이 지금 나쁜 병에 걸려 있으니 정부가 치료를 해주는 것이라고 속이고 정기적으로 피를 뽑고 매독으로 죽어가는 흑인 환자들의 경과를 관찰해온 것이다. 충격적인 사실이 신문 헤드라인을 장식했고 매독실험은 이듬해 중단되었다. 곧이어 청문회와 관련법들이 제정된다.

1979년에는 ‘생명의학 및 행동연구 관련 인간보호를 위한 국가위원회’에서 임상연구윤리에 대한 기본적인 원칙을 담은 일명 ‘벨몬트 리포트’를 제출하게 된다. 내용을 살펴보면 임상연구윤리를 대표하는 헬싱키선언의 중요한 핵심을 요약해 놓은 듯하다.

이 보고서는 연구윤리에 관한 세 가지 기본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일명 벨몬트 원칙이라고도 한다. 첫째는 인간존중 원칙이다. 이 원칙은 임마누엘 칸트의 인간존중 사상을 인용한 원칙이다. 인간은 자율성을 가진 존재로 대우받아야 하며,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전에 충분한 정보가 제공 되어야하고, 피험자 스스로가 자율적으로 판단하도록 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두 번째 원칙은 선행의 원칙이다. 연구가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아야하고 가능한 한 위험이나 피해는 최소화하고 이득은 최대화하라는 원칙이다. 세 번째 원칙은 정의의 원칙이다. 이 원칙은 피험자 선택에 있어서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되고 열악한 환경이나 위치에 있는 피험자를 착취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다. 벨몬트 리포트를 이해하고 있으면 임상연구를 하는 데에서 발생하는 윤리적인 문제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쉽게 정리가 된다. 인간의 존엄함을 지키기 위해 용기 있는 내부고발의 결과로 연구윤리 수준은 큰 발전을 이루게 된다.

죽은 물고기는 물살에 떠내려가고 살아있는 물고기는 거친 물살을 거슬러 올라간다. 깨어있는 지식인은 비윤리적인 현실에 거칠게 저항한다. 바로 살아있다는 증거다. 반면 윤리를 지키지 않는 지식인은 죽은 고기처럼 물살에 떠내려가고 만다. 인간 존엄성을 회복하고 고도의 윤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잘못된 상황에 대항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3) 헬싱키 선언 (Declaration of Helsinki: Ethical principles for medical research involving human subjects)

1964년 6월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제 18차 세계의사회(WMA World Medical Association)총회에서 채택된 선언으로 뉘른베르크 강령과 벨몬트 리포트와는 달리 의사단체가 자발적으로 만든 규정이다. 당시 급속하게 발전하는 의과학의 발전과 함께 새로운 의료기술과 의약품을 연구하는 의사들에게 지침이 필요했다. 뉘른베르크 강령은 인체실험(Human Experiment)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는 반면, 헬싱키 선언은 인체실험에 임상연구(Clinical Research)내용이 추가 되었다. 인간 대상 연구의 일반적인 윤리원칙을 담고 있으며, 이후 기관심사위원회(IRB, Institutional Research Board) 도입의 기초를 이루었다.



5. 4차 산업 혁명과 생명윤리

딥러닝(Deep Learning)을 이용한 인공지능(AI)과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이용한 4차 산업혁명이 빠른 속도로 다가 오고 있다. 이와 함께 넘어서면 안 되는 금기의 영역을 넘보는 과학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생명윤리는 할 수 있다고 다 해서는 안 되고, 하고 싶다고 다 해서는 안 되는 금기가 있다. 과학이 발달 할수록 발생하는 생명윤리 문제가 마구 쏟아질 것이다. 하지만 어떠한 사안이 발생할지 예측하기가 어렵기에 항상 윤리적 지체(Ethical Lag)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윤리적 지체 현상은 생명윤리를 후퇴시킬 수 있다. 이 간극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는 올바른 지식을 공유하고 명확한 기준을 마련해야만 한다. 의과학의 발달이 인류에게 큰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무모한 과학적 호기심이나 성취욕은 인류를 멸망으로 이끌 수 있다는 사실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이명진 소장

성산생명윤리연구소 소장, 행동하는 프로라이프 공동대표로 있으며 의사평론가, 명이비인후과 원장, 서울시 의사회 윤리위원으로 활동중이다. 저서로는 이명진원장의 의료와 윤리 / 의료와 윤리 II, 이명진원장의 의사 바라기, 의학 전문직업성 교육(공동번역), 생명과 성, 성사랑 가정 II ( 공동집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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