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호] 한반도 인권과 정의 아젠다, 6.25전쟁 문제로 시야 옮길 때




[전환기 정의의 과제로서의 6.25전쟁과 민간인 인권]

종전(終戰) 논의가 현실 정치 영역에서 활발해지면서 6.25전쟁이 법적으로 정리되어야 할 필요성 또한 제고되고 있다. 종전 선언은 표면적으로는 정치적, 사실적인 행위로서 법적인 절차와 별도의 것으로 인식되지만 그 실질에 있어서는 군사정전협정을 폐기하는 법적인 성격을 그 자체로 내포하고 있다. 1953년 7월 27일 조인된 군사정전협정이 종전선언을 거쳐 평화협정 체제로 간다면 근 70년을 지속해온 한반도의 휴전 상태가 공식적으로 막을 내리게 되는 대전환이 될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처리되어야 할 전환기적 정의의 쟁점이 필연적으로 부상하게 될 것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유엔 평화구축위원회(UN Peacebuilding Commission)는 전환기 정의 에 대해 “체계적이고 거대한 규모의 인권 유린에 대한 접근방법으로서 인권 유린의 피해자들에게 배상을 제공하고 인권유린의 원인이 되는 정치체제, 분쟁, 혹은 그 밖의 다른 원인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기회를 만들거나 그러한 기회를 강화할 수 있는 체제”를 말하고, 2010년 유엔사무총장실에서는 “전환기 정의에 관한 유엔의 접근법”을 안내 지침문으로 발표하여 “한 사회가 과거 역사 속의 대규모 잔학 행위의 유산을 극복하려는 모든 과정과 메커니즘”으로 정의했다. 전환기 정의의 목표는 “책임 소재를 규명하고, 정의를 실현하며 당사자 간에 화해를 꾀하는 것”이며 결국 “법치( Rule of Law)” 강화를 위한 활동임을 표명했다.

향후 과제로 주어져 있는 ‘한반도 전환기 정의’의 실현에 있어 6.25전쟁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전쟁 책임과 배상의 문제뿐 아니라 사실적 진실 추구의 과제도 그대로 남아있는 거대 인권 범죄의 종합세트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정치적인 영역에서나 학술적인 영역에서나 6.25전쟁의 민간인 납북자 문제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이 관점에서 국군포로의 문제도 대체로 미제로 남아있지만 전쟁을 연구하는 데 있어 전쟁을 결정하는 정치가나 수행하는 군인들에 비해 민간인은 그다지 주목을 못 받는 대상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전쟁의 피해자는 민간인이 절대 다수인데도 전쟁에 관한 국제법은 주로 군인 및 군속, 군대에 관련된 규칙에 집중되어 있었던 것은 이러한 역사적 진실을 반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법 영역에서는 전쟁에서의 민간인 보호에 관한 법제화는 꾸준히 이루어져 왔다. 획기적인 진전은 1949년 제네바 제 4협약에 이르러서야 이루어졌으며, 1977년 제네바 협약 부속의정서 채택으로 민간 재산 보호로까지 확장되면서 점차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앞에서 분석한 COI 보고서와 서울 현장사무소가 작성한 “비자발적 가족분리”에 관한 보고서에서도 이 사건에 대한 제네바 협약 위반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6.25전쟁 종전이 논의되는 상황에서 아직 현실적인 쟁점으로 부상한 바가 없다. 종전을 다루는 책임 있는 인물 중 누구도 이 문제를 언급한 바 없다는 것은 이러한 상황을 잘 보여준다. 특히 북한의 불법적 남침의 직접적 증거이기도 한 민간인 납북자 문제는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문제로 분류된다. COI 보고서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북한이 북한매체를 통해 ‘날조’라고 주장하는 반응을 인용해 두기도 했다.

전쟁 당시부터 한국 정부가 수차례 기록한 납북자 명부 등 객관적 자료에 의하면 북한에 의한 민간인 납북자는 약 10만 명 전후로 추산된다. 그러나 6·25전쟁 휴전협상에서 군인 포로에 관한 협상은 오랜 난항을 거쳤지만, 유엔사측의 입장인 자유의사에 의한 포로 송환원칙이 관철되어 8,343명의 국군포로가 북한으로부터 송환되었다. 유엔사가 추산한 82,000명에 10분의 1 정도에 그치지만 피의 대가를 치른 성과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와 대조적으로 전쟁 중 피랍되어 북한으로 간 민간인 납북자들에 관해서는 ‘실향사민귀향협조위원회’를 설치하여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현실성 없는 선언적인 합의가 있었을 뿐 지금까지 생사확인 및 송환 등 실질적인 해결의 관점에서 아무런 성과가 없는 ‘완전한 실패 상태’에 머물러 있다. 앞에서도 말했듯 이 문제는 ‘종전선언’으로 덮일 수 없는 인권 범죄로서 향후 필연적으로 전후 청산 과정을 통해 해결되어야 할 ‘전환기 정의’ (Transitional Justice)적 과제를 남겨두고 있는 것이다.

완전한 미제인 이 민간인 납북 문제를 여전히 미해결 상태로 남겨둔 채 ‘종전’으로 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세계 제2차 대전 이후 인류가 발달시킨 인권 개념과 국제사회가 구체화시킨 각종 인권 관련 규범의 틀에서 완전히 이탈한 말 그대로 ‘우리끼리’의 종전이란 비현실적인 소망에 불과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6·25전쟁 민간인 납북문제는 1) 현재도 진행되고 있는 전쟁범죄라는 점, 2) 이 범죄의 1차적인 책임은 직접 납치를 조직하고 명령한 북한정권에 있으며, 3) 휴전협상을 통해서 부분적인 군인포로의 자유의사 송환과,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 민간인 납북자에 대해서는 전원 송환에 성공하고도, 한국인 납북자들에 대한 협상은 사실상 포기하고 전면적 실패로 끝나 피해 당사자와 가족들에게 엄청난 상처를 안겨준 데 대한 유엔사령부와 한국정부의 부작위 책임에 대해서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보여진다. ‘전환기 정의’는 이러한 다양한 논점에 대한 종합적 해결이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유엔 보고서들이 조명하는 6.25 인권 문제]

지난 호에 2013년에 설치된 유엔 북한 COI가 낸 유엔북한인권조사상세보고서(이하 “COI보고서”에서 북한의 인권 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썼다. 1) 식량권 침해, 2) 정치범수용소 관련 모든 인권 침해 사항, 3) 고문 및 비인간적 대우, 4) 자의적 체포 및 구금, 5) 각종 차별, 특히 기본적 인권과 자유에 대한 조직적인 박탈 및 침해 속에 이루어진 차별, 6) 표현의 자유 침해, 7) 생명권 침해, 8) 이동의 자유 침해, 9) 외국인 납치를 포함한 강제실종 등으로 분류하여 북한 반인도범죄(Crimes against humanity) 요소들을 분석해냈다.

기본적으로 평시 인권 문제를 ‘반인도범죄’ 틀에서 다루는 것을 목표로 했던 보고서는 1950년부터 1953년까지 6.25전쟁기에 있었던 인권 문제는 마지막 ‘외국인 납치를 포함한 강제실종’ 장에서 납북자, 국군포로 문제를 조명하면서 비교적 간략하게 다루었다. 6.25전쟁에 관련한 북한의 ‘침략범죄’(Aggression)나 ‘평화에 반하는 죄’(Crime against peace)와 같은 국제인도법상 대형 인권 범죄나 ‘전쟁범죄’(War crimes)와 같은 전시에 일어난 구체적 전쟁 인권 문제는 국제 사회에서는 아직 미제로 남아있다.

그러나 6.25전쟁은 과거이면서 현재이다. 왜냐하면 법적으로 공식적인 종전이 없어 국제법적 관점에서는 교전은 드물지만 아직 전쟁 중이다. 무엇보다 전쟁으로 인한 인적인 피해 중 이산가족 문제, 미송환 국군포로, 전시 민간인 납북자 문제도 모두 현재도 북한에 의해서 자행되는 진행형의 계속 범죄라고 할 수 있다. 유엔 COI는 북한에서 지금 일어나는 인권 유린에 초점을 두었기 때문에 6.25전쟁중의 민간인 인권 문제는 조금 밀쳐둔 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OI 보고서와 한국에 설치한 북한 인권을 위한 유엔 사무소는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COI는 북한에 의한 대부분의 납치와 강제실종은 “6.25전쟁 및 1959년에 시작된 일본으로부터의 조직적인 한인 이주”와 관련이 있다고 보고 있다. 그밖에 상대적으로 소수지만 외국인 납치와 전후 납치도 같은 범주에서 다루면서 공통적으로 강제실종자들은 입북 경위나 형태와 별도로 ‘북한을 떠날 권리’, ‘북한 내에서 자유롭게 이동할 권리’를 박탈당했을 뿐 아니라 각종 기회로부터 박탈당한 상황을 모두 인권 문제 범주에서 바라보고 있다. 심지어 ‘속아 북한에 넘어간’ 경우도 강제실종에 포함시킨다. COI의 사실 조사 및 평가 내용의 대략을 살피면서 분석해 보면 다음과 같다.

6.25전시 납북자에 대해 COI는 ‘6.25전쟁 당시 한국 민간인 납치’ 라고 정의한다. 전쟁이 발발한 1950년 6월 25일부터 정전협정 서명일인 1953년 7월 27일까지 자행된 38선 이남에 거주하는 군인이 아닌 일반인의 북한으로의 납치와 이주를 민간인 납치에 해당한다고 보고 8만에서 10만 명 정도가 전시 납북자로 집계된다고 추산했다. 전시 납북은 광범위하고 조직적으로 이루어졌으며 북한 당국이 정책적으로 사전에 계획하고 자행한 것으로 봄으로써 반인도범죄의 구성요소를 충족한다고 보고 있다. 납치 목적과 관련하여 유효한 정보로써 납북자의 직업군에 주목한다. 농작, 건설노동, 그 밖의 기술적인 영역에서 경험이 있는 청년들을 통해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위한 계획된 작전으로 보았다. 가족회 부설 한국전쟁납북사건자료원이 제공한 자료 중에 공무원 2,919명, 경찰 1,613명, 법조인 및 변호사 190명, 의사 424명을 인용하여 적시했다.

이러한 정보는 전시 납북이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계획적인 것임을 뒷받침하는 것으로서 COI는 전시 납북의 근본 목적이 노동력과 전문기술 확보와 동시에 남한의 역량에 손상을 가하기 위한 것으로 보았다. 1953년의 정전협정은 민간들의 귀향을 지원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실제로 귀환한 납북자가 없으며, 이에 대해 북한 노동신문이 “강요를 받은 것이 아니라 그들의 정치적 신념과 재통합, 그리고 민족 양심에 따라 애국영웅적인 시도를 한 것”이라고 한 내용을 인용했다. 국제적십자위원회나 유엔의 강제적 비자발적 실종에 관한 워킹그룹(WGEID)도 북한의 협조 부진으로 어떤 정보도 획득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한편 북한에서 정착한 납북자가 있다 하더라도 극심한 차별 대우를 받았고 ‘적대계층’으로 분류되어 강제노동에 시달렸다고 봄으로써 북한 내에서의 인권 유린 문제로 납북자 문제를 연결했다. COI는 이러한 전시 납북의 제1책임이 조선인민군에 있음을 적시하고 최고사령관 김일성의 지시에 따라 당시 전시 상황을 이용하여 민간인들을 북한으로 강제로 데려갔고 휴전 후에도 돌아갈 기회를 주지 않은 것으로 파악했다. 범법자를 정확하게 적시한 것은 특기할 만하다.

그러나 COI는 6.25 전시납북자 문제가 ‘반인도범죄’인가를 검토함에 있어서는 다소 신중했다. “대략 8만 명의 민간인들이 6.25전쟁 중 북한군에 의해 납치되었다.”고 간단히 언급함으로써 반인도범죄 범주에서 이 문제를 다루는 것에 소극적이었다. 기본적으로 전시에 일어났던 인권 문제는 국제인도법에 따라 규율 되어야 하고, 국제인도법이 민간인의 인권에 관해 군인 및 군속에 비해 비교적 중요성을 덜 두었던 것, 그리고 전쟁을 일으킨 주범이 오래전에 사망한 것 등의 이유가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유엔 인권 기구가 아직 착수하지 않은 영역으로서 전시 민간인 문제를 국제인도법의 차원에서 다루는 것은 남아있는 과제라고 사료된다. 곧 평화에 관한 범죄(crime against peace)나 침략범죄(aggression), 전쟁범죄(war crimes)의 차원에서 다루는 것은 아직 문제제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실질적인 중요성에 비해서 유엔 인권 기구가 국제형사법 틀에서 전면적으로 검토하지 않은 영역으로 볼 수 있다.



[ 미송환 국군포로도 6.25 전쟁 인권 문제]

COI는 2013년판 통일부 북한인권백서를 인용하여 6.25전쟁 정전 당시 약 8만 2,000명의 한국군이 실종되었으며 그 중 5만에서 7만 명 정도가 국군포로(prisoners of war: POW)로 북한이나 북한의 동맹국에 억류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1953년 정전의 결과로 8,343명이 한국으로 송환되어 실제로 최소 5만 명의 국군포로가 계속적으로 억류되었다고 COI는 파악했다. 이들 중 아직 500명의 생존자들이 북한에 남아있으며 한국이나 북한 밖 다른 곳에 국군포로 가족이 약 400명 생존해 있는 것으로 보았다. COI보고서 작성 당시와 비교해서 이 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COI는 일부는 자발적으로 조선인민군에 편입된 것으로 보고 있으며 국군포로는 대체로 강제 노역장에 투입된 것으로 파악했다. 억류된 국군포로들은 1956년 이후에는 민간인 신분으로 전환되어 광산 등 노예 노동에 투입되어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고 증언자들을 인용해 밝혔다. COI는 탈출에 실패한 국군포로들의 고문과 사형 등에 관한 증언을 청취했으며 사회로 돌아간 경우에도 최하위 성분으로 분류되어 혹독한 고통을 겪었다고 파악했다. 북한에 생존해 있는 국군포로와 한국의 가족들은 몹시 제한된 이산가족 상봉 등을 통해 일부 생사가 확인되었지만 북한의 기본적인 입장이 국군포로 문제는 정전협정에 의하여 진행된 국군포로 송환 당시 마무리되었다는 태도를 견지하고 북한에 남아있는 국군포로들은 모두 자발적으로 남은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COI는 6.25 납치 민간인 문제뿐 아니라 국군포로 문제를 ‘반인도범죄’ 범주에서 다루는 것에 대해서는 역시 적극적이지 않았다. “수만 명의 국군 포로들이 석방되고 송환되었어야 하나 그들은 계속 구금되어 있었고, 상당수는 구금과 유사한 상황에서 탄광 등에서 일하도록 강요당했다”고 언급함으로써 기본적으로 제네바협약 등 국제인도법적 쟁점을 남기는 국군포로 문제에 대해서도 상대적으로 ‘반인도범죄’ 범주에서는 적극적으로 다루지 않았다.

국군포로 문제는 전시 민간인 납북자 문제와 또 다른 차원의 고유성을 갖고 있다.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고 국가정체성을 유지하는 문제에도 깊이 관련되어 있다. 요컨대 COI 보고서 차원에서 비교적 중요성을 덜 둔 전시 민간인 납북자 문제나 국군포로 문제는 국제인도법적 과제와 국가정체성 관련된 입법 및 실천 과제를 남길 뿐 아니라 종전선언과 관련되어 반드시 검토되어야 할 전환기 정의 과제로서 유엔 인권 기구 차원을 넘어선 관심이 요구된다.



[ 유엔이 이산가족 문제도 인권 범죄로 보는 까닭]

2016년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Office of High Commissioner for Human Rights)는 한반도 내 ‘비자발적 가족분리’ 문제 해결의 시급성을 지적한 보고서(Torn Apart: the Human Rights Dimension of the Involuntary Separation of Korean Families)를 발간했다. 이 작업은 그동안 유엔 인권 기구가 소홀히 했던 영역의 보완이라는 면에서 평가받을 만했다. 보고서는 1950년 발발한 6.25전쟁, 북한에 의한 납치와 강제실종, 그리고 탈북으로 인해 헤어진 가족들이 만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다루었다. ‘가족분리’라는 관점은 ‘개인의 실존적 고통’의 측면을 강조한다는 측면에서 인권에 관한 보다 본질적인 접근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COI 보고서가 기존의 여러 NGO나 공신력 있는 자료를 취합하여 정리한 것이 주종이었다면 이 보고서는 현장에서 활발한 현장 정보수집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6.25전쟁으로 인해 발생한 이산가족문제를 인도주의 사안으로 다루었던 것을 넘어 ‘인권의 관점’에서 조명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산가족을 단순히 헤어져 분리된 이산가족(separated families)이 아닌 ‘비자발적 가족분리(involuntary separation of families)’로 규정함으로써 인권 범죄의 하나로 본 것이다. 서울유엔인권사무소의 시나 폴슨 소장은 보고서에 기술된 피해자들의 유형은 다르지만 “그들의 공통적인 바람은 자신들의 고통을 알아주고 가해자에 대해 책임을 추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산가족에 대해서도 국제형사법적 관점에서 ‘범죄 피해자’라는 관점을 적용하고 책임소재를 찾는 작업은 6.25전쟁에 관한 전환기 정의의 관점에서도 의미 있는 진전이 될것으로 보인다.

보고서는 가족분리를 인권 차원에서 접근할 때의 이점과 가족재결합을 위한 인권 차원 접근의 중요성을 다루고 있고, 구체적인 사례로서 (1) 6.25전쟁중 피난으로 인한 가족분리(이산가족), (2) 강제실종으로 인한 분리(전시 납북자, 전후 납북자), 그리고 (3) 북한 탈출로 인한 분리(탈북자) 문제를 하나의 틀 속에서 다루고 있다. 그동안의 북한 인권 문제 접근법에서 ‘이산가족’ 문제의 인권적 관점에서의 조명은 드물었다. 보고서는 100만에서 최대 500만 명이 6.25전쟁중 가족을 두고 이북에서 이남으로 이동했다고 추정되며, 10만 명 전후가 강제 실종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5년 10월 기준으로 실종된 친인척의 소식을 듣거나 직접 만난 경우는 2000명이 안 되며 이러한 상황에 대한 국제적 개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전쟁 중 개인의 안전을 위하여 북한을 이탈하여 가족과 분리되었다고 해도 재회가 어려운 원인은 북한이 정보와 이동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는 정책으로 재회를 막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확실히 이산가족 문제를 국제인권법의 관점에서 조명하기 시작한 것은 새로운 시도로 보인다. 북한의 인권 문제가 70년 이상 획기적인 개선이 되지 않는 것은 “안전보장”을 명분으로 내세운 북한의 시책에 이유가 있었던 점을 유엔의 인권 기구가 공식화한 것이다. 실지로 정부간 극히 제한된 이산가족 상봉이 인권에 관점에서 의미 있는 행사인가에 관해서도 검토할 필요성을 제기한다고 본다. 보고서는 인도적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다루어져 온 이산가족 문제를 국제인권법 규범과 원칙을 적용하여 접근함으로써 현실적인 대응을 촉구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는 것으로 평가했다. 또한 관습 국제인도법 위반인 점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요컨대 북한 내에서 벌어지는 인권 문제만큼이나 70년이 되도록 덮어두고 있는 6.25전쟁 인권 문제도 심각하다. 종전 선언이 정치인들의 선언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에서 사람을 존중하는 한반도 시대를 여는 선언이 되려면 각 개인이 감당하고 있는 인권 비극을 해결해 줄 의무가 있다. 인권 문제를 덮고 종전, 진정한 평화로 가기는 쉽지 않고 옳지도 않을 것으로 본다. 6.25전쟁 인권 문제에 본격적으로 돌입할 시점이 아닌가 한다.

 



김미영 교수 

전환기정의연구원장, 전 한동대 교수


신아세아연구소에서 발간하는 [신아세아] 2019년 봄호에 실린 필자의 논문 <<국군포로, 납북자, 탈북자 인권 문제의 현황과 해결 방법의 모색>>의 일부와 중복됨을 밝혀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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