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이라는 과학
1년에 걸친 칼럼을 게재하면서 정작 법학에 대해 쓰지 못했던 점이 아쉬웠다. 이 글이 마 지막 기회라 법과 윤리의 관계에 대한 짧은 이야기를 해본다. 일반인 뿐 아니라 법률 전 문가들도 법학에 대한 이해가 과거에 묶여 있 는 경우를 보게 된다. 법과대학에 입학하는 학생들은 그 좋은 예이다. 학생들은 대체로 처음엔 자연법이나 이성법이라는 단어에 친 숙하고, 법률실증주의라는 단어에 거부감을 보인다. 다른 나라와 비교하여 자연법주의자 가 유난히 많은 이유는 잘 모르겠다. 추측하 건대 교육과 실무 모두가 원인이다. 법학은 학교와 실무가 분리되어 있다. 학문은 형이상 학을 존중하고, 실무는 단순 법 기술로 이해 해야 할 것같지만, 현실은 그 반대이다. 학생 들은 졸업해도 자연법주의자가 된다.
나는 자연법론은 시대상황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자연법론의 이론 구조는 법률 규정 과 해석자를 각자 독립적으로 전제한다. 법규 정은 해석자가 없다면 기호 또는 문자에 불과 하다. 법 효과 원인은 인간의 해석이다. 이러 한 설명 자체에 논리적 오류가 있다고 생각하 지 않는다. 그러나 자연법론은 18세기 임마 누엘 칸트가 제기한 주체의 이성적 판단과 객 관적인 상황의 이분적 구분에서 벗어나지 않 는다. 칸트가 살아가던 시대 이론 모형에 적 정한 수준이다. 오늘날 과학적 이론은 이런 식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20세기 이성은 집 단의 선택을 받는다. 지성인은 소수가 아니 며, 지식은 독점되지 못한다. 21세기가 되면 독점적 전문가의 이성을 논의할 수 있는 여건 도 없어진다. 이세돌이 알파고에 지는 순간, 훈련을 통해 독점할 수 있는 인식과 지능은 지구상에서 사라졌다고 봐야 한다.
현대 과학은 인간의 이해가 고독한 사유로 성 숙되는게 아니라는 점을 말해준다. 뇌신경과 학은 이 사실을 꽤 오래전부터 제안했다. 어 떤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알려면 과거 처럼 사람을 기준으로 추정하는게 아니다. 어 떤 사람이 읽고 본 자료(data)들만 알면 충분 히 짐작할 수 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 령의 당선은 대부분 여론 전문기관도 예측하 지 못했다. 전통적인 방식의 설문조사나 선호 도 질문만 고집한 여론 조사기관들은 선거 후 자신들의 오래된 방식이 더 이상 유용하지 않 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유일하게 트럼프 의 당선을 예측한 조사 방식은 현대적 데이터 를 이용했다.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에 올린 문장들을 분석했다. 일단 글쓰기는 말하기보 다 많은 인지적 과정을 거친다. 그래서 같은 정보라도 쓴 글이 말보다는 주체의 본심에 일 치할 확률이 높다. 그래서 인터넷 공간의 짧 은 글들을 컴퓨터로 분석한 정보가 막대한 비 용을 들여 사람들에게 직접 물어본 결과 분석 결론보다 높은 일치도를 보인 것이다. 이게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회사의 경쟁력이다.
현대사회에서 법해석은 법률과 사안의 폐쇄 적 처리 과정이 아니다. 사람의 살인을 평가 하는 방식은 사안과 형법 제250조의 적용만 고려할 수 없다. 근대 이전의 법은 이러한 관 계성을 고려할 수 없었다. 오로지 해석자의 지식과 정보에 의존하여 사안을 판단해야 한 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의회 제도는 근대 후반 정립되었고, 그에 맞추어 대학교육은 폭발적 으로 증가한다. 법률의 증가도 있었다. 영미 법 조차도 이제는 전통적인 보통법(법률 없 이 이전 판례들을 검토하여 결정하는 방식) 을 포기한지 오래되었다. 그에 맞추어 법이 론은 해석 규칙을 정하기 시작한다. 즉 법원 에서 혼란스러울 수 있는 사태를 미리 판단하 게 해석 데이타를 삽입시키는 것이다. 지속 된 입법으로 법규만으로도 해석을 위한 토대 가 만들어진다. 해석자의 지위는 점차 줄어들고, 법체계가 설계한 방식의 해석만 유지되어 야 한다. 자연법론이 근대 법이해에서 타당성 을 잃는 이유이다.
19세기 과학적 사고란 수천년 동안의 인류 문 명의 이성적 방법론을 집약시킨다. 근대 교육 에서 수학을 보면 비교적 이 특성이 단순해진 다. 우리는 간단한 수리적 규칙부터 시작하여 고등학교에서 소위 수포자를 양산한다는 미분 적분까지 배운다. 한군데서 삐끗하면 돌아 올 수 없는 강을 건넌다.
그 이유는 현대 수학이 기본적으로 삼각형의 내각의 합(180도), 가상적인 원을 정하는 규 칙( 3.14…), 함수의 위상공간(4분면), 삼각 함수를 통해 만들어지는 각 곡선(사인 코사 인 탄젠트 등)을 추론하고, 한 지점을 알아내 기 위한 미분법과 그 합산을 통해 다음 궤적 을 예측하는 적분까지 하나의 체계로 연결되 기 때문이다. 수학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중간 과정 이해가 아니라, 다음 과정과 관련 영역을 이해하기 어려워서일 것이다. 여기서 현대적 과학의 특성도 형성된다. 우리는 해석 학(미적분학의 다른 이름)을 다룰 때 삼각함 수의 특성에 의심을 갖지 않는다. 삼각함수의 이론적 토대가 검증되었다는 기대 때문이다. 방정식이란 하나의 모듈(module)이다. 관계 된 수학 이론은 이를 확장시켜 만든 구조 설 계(structual design)로 볼 수 있다. 각 모 듈은 다른 과학 기술에서 응용된다. 예를 들 어 통신기술은 삼각 함수의 파장 특성인 가우 시언 방정식을 토대로 하고, 양자역학은 유클 리드 공간을 복소수 평면으로 확장시킨 해밀 톤 공간 덕분에 연산을 할 수 있고, 의사들은 불츠만 방정식 때문에 주사제가 환자의 몸에 퍼지는 속도를 계산할 수 있다.
20세기 법학은 „"과학"이다. 과학적 규칙에 가깝다. 오늘날 법은 해석자의 관점이 아니 라, 법규와 법규 간에 정한 규칙에 따라 자동 적으로 결정되어야 하는 하나의 프로그램이 다. 여기서 법관은 고독한 법해석자가 아니 라 광범위한 법률들간 규칙 연결을 통해 법 을 기능적으로 활성화시킨다. 아주 오래전부 터 „법관은 "법률을 말하는 입"(몽테스키외) 이기도 했지만, 이제는 „법관은 법이 작동하 도록 도와주는 "기술자"여야 한다.(니클라스 루만)
윤리적 법과 법적 윤리 "윤리"란 한 사회에서 윤리적인 것으로 인식 되는 행동과 판단을 말한다. 현대사회 법제도 는 윤리적이지 않는 경우는 있지만 비윤리적 일 수는 없다. 그 이유는 위에서 말한 바와 같 이 현대법의 DNA때문이다. 법은 법의 해석 과 적용, 그 절차, 효과, 심지어 잘못 적용될 경우의 회복까지 규칙으로 정하고 있다. 그래 서 해석을 위한 규칙이 비윤리적이어야 그 결 론(법효과)으로 비윤리적 법이 나올 수 있다. 보통 사람들이 법적용에 분노를 느끼는 경우 는 있는데, 법률 자체가 문제인 경우보다는 그 적용이 (인간에 의해) 잘못 되거나, 판결 의 의미를 오해할 때 그런 감정에 빠질 수 있 다. 간단히 말하면 컴퓨터의 프로그램이 해킹 당했거나, 결과치를 잘못 판독한 것이다.
현재 우리사회에 통용되는 법률 중에는 „"윤 리" 표제를 달고 있는 법률들이 있다. 대표적 인 것이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약 칭 생명윤리법)이다. 이 법률은 윤리를 고양 시키거나 지키기 위한 규칙이 아니다. 법률은 인간의 존엄성이나 환자의 자기결정권과 같 이 기존 헌법이나 조약에서 형성된 법규범들 과 새로운 생명공학기술의 행위 방식이 법체 계 내에서 무리없이 순환되도록 조정해준다. 1990년대부터 논쟁된 생명윤리법의 많은 논 쟁들이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었는가 살펴보 면 이 법률의 성패를 판단할 수 있다. 만일 다 른 법규범과 규칙들이 조화되어 그동안 고민 하던 문제들이 줄어들었다면 정상적인 프로 그램으로 성공한 것이고, 그렇지 않고 지속적 으로 논쟁이 발생한다면 프로그램 버그 또는 오류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생명윤리법은 윤 리를 법으로 보호하는게 아니라, 사회적 가치 로 승인된 윤리가 작동하도록 법으로 결정한 기능성 목록으로 볼 수 있다.
법률을 보는 관점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사회적 가치를 보호하거나 강제하기 위하여 탄생했다고 보는 것이다. 이 경우 윤리는 법률의 구성 부분이다. 다른 관 점은 법률이 갈등을 얼마나 해소시키고 있는 가 평가한다. 이 경우 윤리적 관점은 구성 부 분이 아니라, 법률의 결과이다. 후자가 근대 적 법이해에 가깝다. 만일 윤리적 이해를 단 순 구성요소로 보고 입법 절차를 객관적 과정 으로 보면, 윤리적 이해가 바뀌었다고 법률이 개정될 필요성보다는 윤리적 이해를 근거로 법률을 유지할 필요성이 더 많다고 설명하기 쉽다. 그 이유는 윤리적 평가와 판단은 다른 사회적 이해와 달리 오늘날 복잡하고 다층적 인 토론을 거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배아 와 태아는 법개념이 아니다. 법률은 이를 직 접 규정하고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윤리법은 2003년 제정하면서 배아를 법 으로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정하고 있다. 또 한 태아에 대한 유전자 검사나 치료행위를 금 지한다. 당시 논쟁점은 배아 연구를 위한 인 간 배아의 생성 여부였다. 전통 윤리는 이를 금지하는 것이고, 과학적 입장은 임신 목적으 로 생성된 배아 중 그 목적이 종료된 경우 연 구할 수 있자는 것이다.
이 논쟁에 참여하면서 개인적으로 답답했던 이유는 윤리는 논쟁에 참여한 사람들이 주관 적으로 결정할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윤리란 주관적 결단이나 인지적으로 만들어 지는 결정이 아니다. 이 문제는 "비트겐쉬타 인의 „사적 언어" 문제인데, 솔 크립키(Saul Aaron Kripke)가 1982년 책 „Wittgenstein on Rules and Private Languag"( 남기창 역, 비트겐쉬타인 규칙과 사적 언어, 2008년 철학과 현실사)에서 아주 명료하게 해결하였다. 과학적 방식은 성립된 규칙을 따 라야 한다. 법률 제정은 자신의 주관적 윤리 관을 주장하는게 아니다. 근대적 입법이란 이 미 확립된 윤리 규칙에 확장할 규칙들이 조 화될 수 있는가를 검토하는 일이다. 즉, 새로 운 전자기기를 설치할 때 적당한 연결성을 검토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입법도 과학이다.
요컨대 우리는 "윤리적 법"의 시대가 아니라 "법적 윤리" 시대를 살고 있다.
하부체계로서의 법
8-90년대까지 법과대학은 권력에 관심을 가 진 젊은 학생들이 많았다. 당시만 해도 법과 대학을 졸업하고 일정한 시험에 통과하면 권 력에 다가간다는 미신이 통했던 것같다. 적어 도 2000년대 이후 법과대학생들은 그런 허 망한 꿈을 좇지 않는다. 다행이다. 사실 법학 이 권력행 통로였던 적은 없었다.
니클라스 루만(Niklas Luhmann 1927- 1998)에 따르면 사회는 다양한 체계들로 구 성된다. 사회는 너무 복잡해져서 더 이상 하 나의 학문이나 이론이 통용될 수 없게 되었 다. 하부체계는 다양한데 예술, 정치, 문학, 종교, 윤리, 기술 등의 자기만의 전문적 영역 이 포함된다. 법학은 그 중 하나이다. 루만의 생각은 현대 법학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 다. 체계이론은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한 데, 경희대 강희원 교수의 루만 „법사회학“ 번 역판은 일찍이 출간되었다. 2010년 이후 고 려대학교에 부임한 윤재왕 교수의 왕성한 번 역작업으로 체계이론의 중요 이론들은 대부 분 번역 소개되고 있다.
루만은 법학을 전공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탈 코트 파슨스에게 사회학을 배운 후 독일 마부 르크 대학에서 사회학과 교수를 지냈다. 그래 서인지 체계이론의 착상은 법학적 이해와 많 이 유사하다. 나는 사회학 이론가들 중 루만 같은 착상을 공유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 래서인지 루만은 사회학 보다는 법학에서 더 활발하게 연구된다. 특히 그의 „하부체계로 서의 법학“은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는 권력 적 법의 미신을 벗겨 내는데 유익하다. 법학 은 하부체계일 뿐이고 모든 것을 관장하는 메 타 이론이 아니다.
나는 2007년부터 학교에서 틈나는대로 학생 들에게 체계이론을 강의하는데 20대 초반 학 생들은 체계이론을 쉽게 이해하는 것을 목격 한다. 상대적으로 법학을 오래 전공한 전문가 들 집단은 체계이론에 대한 이해도가 낮다. 명확한 원인을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추측하 건대, 체계이론이 가진 전제와 배경에 젊은 세대들은 직감으로 친숙함을 느끼는 듯하다. 체계이론은 전산이론과 많이 닮아 있다. 이론 의 설계 자체가 생물학에서 비롯되었고, 주된 설명들이 정보통신과 컴퓨터 등의 기술적 작 동원리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루만은 법 과 사회를 코드와 프로그램으로 작동되는 컴 퓨터 작동 원리로 설명한다. 반면에 현역 법 률가들은 전산 기술에 이해가 없는 경우와 이 기술적 설명을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일부 법학자들은 루만의 체계이론을 마치 철학적 형이상학처럼 오해하기도 한다.
젊은 세대들은 컴퓨터와 네트워크 이해가 빨 라서 그런지 몰라도 체계이론의 특성을 쉽게 이해한다. 나는 가끔 수업시간에 학생들과 재 미있는 실험을 하기도 하는데, 법률 문언을 세부적인 요소 명제로 바꾸고, 이를 작동할 수 있는 간단한 명령어로 코딩 해보는 것이 다. 프로그램으로 작동시키면 워드프로세서 의 오탈자 찾기처럼 순식간에 오류가 발견된 다. 판례를 요소 명제로 바꾸고 코딩하여 프 로그램에 물리면 형식 오류와 다른 명제(법 률)와 모순 관계를 찾아 준다. 이 실험을 통 하면 법학에서 난해한 문제란 진짜 어려워서 일 수도 있지만, 이처럼 텍스트 자체의 진술 간 모순 관계 때문이기도 하다. 즉 형성된 판 례의 논리 체계나 다른 법규 관계 설정(진술) 이 잘 못되어 오류가 발생하는 경우 학생들의 지적 수준을 탓할게 아니다. 이런 경우는 사실 꽤 많다.
Super Cruncher 데이터 기반 이해
현대 과학이론은 사람의 직관이 아니라 객관 적 데이타에 따라 문제 해결을 시도한다. 통 상 고전적 세대들은 이해 못하거나 꺼리는 행 동 방식들이 있다. 나와 비슷한 세대들은 증 거에 기반한 판단을 학문적 훈련의 기본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새로운 세대들은 데이타 중 심 판단을 더 선호하는 듯하다. 좋은 예는 부 모와 자녀 간 컴퓨터 게임에 대한 의견 차이 이다. 특정 세대 집단은 게임을 무의미한 시 간 낭비로 생각하는데, 어린 세대는 게임이 주는 즐거움을 네트웍에서 데이타가 빠르게 전달되는 것 자체에 흥미를 가진다. 여기서 열정적 게임광이 나중에 세계적인 프로게이 머로서 된다는 식의 우연성을 말하는게 아니 다. 그런 분석은 대부분 고전 심리 이론의 오 해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경제학자들은 미국으로 자살테러 를 위하여 잠입하는 테러범들이 생명보험에 가입하는게 유리한지 고민할 수 있다. 시카고 대학교 스티븐 레빗(Steven David Levitt) 교수는 „"괴짜 경제학"(Freakonomics)이라 는 유명한 책 2편(Super Freakonomics, Harper Collins 2011)에서 이 문제를 다룬 다. 레빗 교수의 설명은 이렇다. 미국의 정보 국에 의해 관리되는 테러리스트는 나이와 성 별, 출신, 이름, 종교, 가족관계, 그리고 금융 정보로 구분된다. 자살테러를 목적으로 입국 하는 경우 일정 기간 사용할 자금만 가져온 다. 그렇기 때문에 조회한 조건에 맞는 대상 이 되는 순간 수사기관의 요주의 인물이 된 다. 이 대상이 안 되려면 생명보험을 가입하 는 편이 유리하다. 생명보험을 가입하고 있는 자는 적어도 짧은 기간 안에 자살 테러를 할 확률이 낮기 때문이다.
데이타 기반 시장은 실물 경제이론을 전복시 키기도 한다. 운동화의 실물 시장은 소비자 들이 원하는 디자인과 기능의 생산과 이를 광 고하여 판매되는 최종 수입으로 평가된다. 그 러나 미국계 회사 나이키의 에어 조던 시리즈 는 전통적 생산-소비의 규칙을 깨고 있다. 마이클 조던이란 농구선수 이름으로 출시된 1985년 시리즈는 현재 32번째 에디션이 출 시되고 있다. 한 에디션마다 생산량과 기간 이 정해져 있는 특성상 조던 시리즈의 특정 색상과 제품군은 생산 중단 후 가격이 올라가는 현상을 만든다. 출시될 때 69불이던 운동 화가 2018년 3천만원에서 그 이상에 판매되 는 경우도 있다. 이를 Resell(재판매) 시장이 라고 한다. 나이키 에어 조던 리셀 시장 총액 은 2018년 기준 1조원이 넘었다. 리셀 경제 는 다른 운동화나, 고급 시계, 가구, 자동차 등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리 셀시장의 특징을 데이타 분석으로 보고 있다.
데이타는 판매량과 선호도, 그리고 남은 재고 와 다른 매스 미디어 노출도 등을 제시한다. 게임에 익숙한 세대들은 전통 경제학처럼 직 관에 따라 이해된 가설과 추측으로 구성된 요 소(증거)를 통해 평가하는게 아니라 네트웍 에서 순간적으로 처리되는 데이타 흐름의 특 성을 새로운 가치로 이해한다. 운동화의 디자 인이나 기능이 아니라 전체 생산량과 선호도 관계의 흐름을 보여주는 중립적 데이타를 원 인으로 파악할 수 있다. 시장에서 많이 선택 된 인기 제품보다는 데이타의 집중과 흐름이 빨라지는 희귀 제품이 네트웍에서 리셀 시장 에서 가격 폭등으로 이어진다는 정보 분석이 가능해진다. 컴퓨터 게임에 익숙한 세대는 가 공된 정보가 아닌 순간적 데이타 흐름을 통해 판단하는데 익숙하다.
과거 리니지 사건 때 게임 아이템이 경제적 가치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이제 고가의 게임 아이템은 거대 상 속재산으로 편성될 만큼의 규모로 성장했고, 몇 해 전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비트코인(암 호 화폐)의 기반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인공 지능 발전과 함께 블록체인 기술은 전통적으 로 법학이 담당하던 인증 체계를 빠르게 잠식 하고 있다. 조만간 공증과 같은 분야는 블록 체인 기술로 대체될 전망이다. 블록체인 기 술은 비밀유지가 필요한 자료들을 해킹만 아 니라 저작권 보호까지하여 보호할 수 있다.( 최근 명품 브랜드들은 이 기술을 이용한 정품 인증 시스템을 만들었다) 부동산 등기는 블 록체인으로 관리하면 영구적 보안이 가능하 고, 이를 스마트 컨트랙트(계약) 기술과 연계 시키면 부동산 거래는 1초 이내에 자동으로 완벽하고 안전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근대 법학이 규칙의 기능적 관리로 인식되면 서 고도로 발전한 전산 프로그램으로 급격히 전환될 가능성은 1960년대부터 법학에서 활 발하게 예측되었다.
칼럼을 마치며
1년간의 크레도 칼럼을 통해 낙태와 존엄사, 유전자 편집술 등의 주제를 다루었다. 목적 은 의생명공학 기술의 발전에 따른 사회적 문 제에 법학이 어떤 해결책을 제안할 수 있을 까 하는 궁금증 때문이었다. 의료 법학은 새 로운 분야이다. 그런데 의료 법학의 연구 내 용을 보면 항상 유지되는 패턴이 있다. 새로 운 문제 해결을 위하여 오래된 해결책을 적용 하는 것이다. 내 생각에 오래된 해결책(법학) 은 현재의 문제 해결에 약할 뿐 아니라 오래 된 문제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다.
의생명공학 기술과 법학은 같은 시공간에 있 다. 함께 발전하고 있다. 체계이론적으로 법 은 또 다른 하부체계인 의생명공학과 윤리학이 스스로 해답을 찾도록 도와 줘야 한다. 법 의 역할은 거기서 끝난다. 이를 넘어 어떤 가 치적 강제를 법으로 제안하는 일은 현대적 법 학과 부합하지 않는다. 법관은 직업인이고 사 회적 가치를 결정할 자격을 가지지 못한다. 비전문적인 입법과 권한을 초과한 주관적 판 결이 만연하는 현실은 매우 아쉽다. 체계이 론의 실질적 완성자로 볼 수 있는 군터 토이 브너(Gunther Teubner 1944-)는 하부체 계 내의 정밀한 토론과 문제해결이 증가되어 야 하며, 법률에 과다한 기대를 거는 현상이 지속되면 결국 법체계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 는 현상을 '조종의 트릴레마'(regulatrory trilemma)라고 한다. 법학이 사회 현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다른 하 부체계와 조화되지 못한 채 영향력이 과다해 지는 경우(법률 만능주의)를 주의해야 한다. 법에 과다하게 해결을 기대하고, 원하는 답 이 나오지 않을 경우 실망으로 바뀔 수 있다. 사회 내 규칙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위험 하다.
전문화된 법은 더욱 세분되어 각자의 영역을 만든다. 오늘날 유명한 법학자도 일반인 정도 수준의 이해와 과거적 이해에 고정된 경우가 많다. 물론 유명한 윤리학자나 의생명공학자 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의 무능력은 최종적으 로 시장의 선택을 통해 걸러져야 할 수 밖에 없다. 전문 하부체계 역시 사회의 자율적 선 택에 따라 결정될 수 있다. 적어도 헤겔과 베 버 이후 사회과학은 울리히 벡(Ulrich Beck 1945-2015)이나 기든스(Anthony Giddens 1938-)의 프로젝트처럼 개인을 중심 으로 제도가 결정되는 것은 반대한다. 고전적 이해 방식에서 잠시 떠나보는 것이 현대 법제 도를 이해하는 유리한 조건이다.
법학은 실제 사태를 인식할 수 있는 프로그램 이 아니다.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절차 과정을 세련되게 만드는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전 통적인 정의나 윤리, 도덕은 각 전문 하부체 계에서 스스로 결론을 얻도록 법은 그 절차 를 만들어야 한다. 경험적으로 보면 무엇을 얻으려는 집단이 기존 규칙의 변경을 요구한 다. 이들이 제공하는 정보는 제한적이고 왜 곡되기 쉽다. 대부분의 생명공학 기술과 관 련된 사건들은 같은 패턴을 가진다. 특정 기 술의 이익을 사회적으로 승인 받기 위하여 입 법과 사법 절차를 도구화하는 것이다. 입법은 하부체계 영역으로 논의가 보장되도록 절차 를 구성하고, 그에 따른 결론이 기존의 규칙 들과 조화되도록 결정해주고, 입법 이후 파생 될 규칙 간의 균형성이 확보되게 만들어야 한 다. 시민의 자율적 선택이 최소화될 수 있어 야 한다. 사법은 규칙 간의 논리적 결과에 우 선적으로 일치해야 하고, 교환되는 다양한 데 이타를 통해 규칙 간 모순 없는 행위 기대가 판결의 결과로 활성화되도록 구성해야 한다. 법은 강제가 아니라 합리적 조절로 모두가 승 인할 수 있도록 문제를 해결해줘야 한다. 법 을 강제로만 생각하면 국가는 깡패 집단과 다 를 바 없다.(Hans Kelsen)
신동일 교수
고려대학교에서 법학박사 학위 취득 후, 독일 괴팅엔 대학교에서 박사 후 연구과정을 이수하였다.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실장, 기독교생명윤리협회이사, 낙태반대연합 법률자문위원을 역임하였고, 현재 국립한경대학교 법학과 교수이다.
법이라는 과학
1년에 걸친 칼럼을 게재하면서 정작 법학에 대해 쓰지 못했던 점이 아쉬웠다. 이 글이 마 지막 기회라 법과 윤리의 관계에 대한 짧은 이야기를 해본다. 일반인 뿐 아니라 법률 전 문가들도 법학에 대한 이해가 과거에 묶여 있 는 경우를 보게 된다. 법과대학에 입학하는 학생들은 그 좋은 예이다. 학생들은 대체로 처음엔 자연법이나 이성법이라는 단어에 친 숙하고, 법률실증주의라는 단어에 거부감을 보인다. 다른 나라와 비교하여 자연법주의자 가 유난히 많은 이유는 잘 모르겠다. 추측하 건대 교육과 실무 모두가 원인이다. 법학은 학교와 실무가 분리되어 있다. 학문은 형이상 학을 존중하고, 실무는 단순 법 기술로 이해 해야 할 것같지만, 현실은 그 반대이다. 학생 들은 졸업해도 자연법주의자가 된다.
나는 자연법론은 시대상황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자연법론의 이론 구조는 법률 규정 과 해석자를 각자 독립적으로 전제한다. 법규 정은 해석자가 없다면 기호 또는 문자에 불과 하다. 법 효과 원인은 인간의 해석이다. 이러 한 설명 자체에 논리적 오류가 있다고 생각하 지 않는다. 그러나 자연법론은 18세기 임마 누엘 칸트가 제기한 주체의 이성적 판단과 객 관적인 상황의 이분적 구분에서 벗어나지 않 는다. 칸트가 살아가던 시대 이론 모형에 적 정한 수준이다. 오늘날 과학적 이론은 이런 식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20세기 이성은 집 단의 선택을 받는다. 지성인은 소수가 아니 며, 지식은 독점되지 못한다. 21세기가 되면 독점적 전문가의 이성을 논의할 수 있는 여건 도 없어진다. 이세돌이 알파고에 지는 순간, 훈련을 통해 독점할 수 있는 인식과 지능은 지구상에서 사라졌다고 봐야 한다.
현대 과학은 인간의 이해가 고독한 사유로 성 숙되는게 아니라는 점을 말해준다. 뇌신경과 학은 이 사실을 꽤 오래전부터 제안했다. 어 떤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알려면 과거 처럼 사람을 기준으로 추정하는게 아니다. 어 떤 사람이 읽고 본 자료(data)들만 알면 충분 히 짐작할 수 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 령의 당선은 대부분 여론 전문기관도 예측하 지 못했다. 전통적인 방식의 설문조사나 선호 도 질문만 고집한 여론 조사기관들은 선거 후 자신들의 오래된 방식이 더 이상 유용하지 않 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유일하게 트럼프 의 당선을 예측한 조사 방식은 현대적 데이터 를 이용했다.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에 올린 문장들을 분석했다. 일단 글쓰기는 말하기보 다 많은 인지적 과정을 거친다. 그래서 같은 정보라도 쓴 글이 말보다는 주체의 본심에 일 치할 확률이 높다. 그래서 인터넷 공간의 짧 은 글들을 컴퓨터로 분석한 정보가 막대한 비 용을 들여 사람들에게 직접 물어본 결과 분석 결론보다 높은 일치도를 보인 것이다. 이게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회사의 경쟁력이다.
현대사회에서 법해석은 법률과 사안의 폐쇄 적 처리 과정이 아니다. 사람의 살인을 평가 하는 방식은 사안과 형법 제250조의 적용만 고려할 수 없다. 근대 이전의 법은 이러한 관 계성을 고려할 수 없었다. 오로지 해석자의 지식과 정보에 의존하여 사안을 판단해야 한 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의회 제도는 근대 후반 정립되었고, 그에 맞추어 대학교육은 폭발적 으로 증가한다. 법률의 증가도 있었다. 영미 법 조차도 이제는 전통적인 보통법(법률 없 이 이전 판례들을 검토하여 결정하는 방식) 을 포기한지 오래되었다. 그에 맞추어 법이 론은 해석 규칙을 정하기 시작한다. 즉 법원 에서 혼란스러울 수 있는 사태를 미리 판단하 게 해석 데이타를 삽입시키는 것이다. 지속 된 입법으로 법규만으로도 해석을 위한 토대 가 만들어진다. 해석자의 지위는 점차 줄어들고, 법체계가 설계한 방식의 해석만 유지되어 야 한다. 자연법론이 근대 법이해에서 타당성 을 잃는 이유이다.
19세기 과학적 사고란 수천년 동안의 인류 문 명의 이성적 방법론을 집약시킨다. 근대 교육 에서 수학을 보면 비교적 이 특성이 단순해진 다. 우리는 간단한 수리적 규칙부터 시작하여 고등학교에서 소위 수포자를 양산한다는 미분 적분까지 배운다. 한군데서 삐끗하면 돌아 올 수 없는 강을 건넌다.
그 이유는 현대 수학이 기본적으로 삼각형의 내각의 합(180도), 가상적인 원을 정하는 규 칙( 3.14…), 함수의 위상공간(4분면), 삼각 함수를 통해 만들어지는 각 곡선(사인 코사 인 탄젠트 등)을 추론하고, 한 지점을 알아내 기 위한 미분법과 그 합산을 통해 다음 궤적 을 예측하는 적분까지 하나의 체계로 연결되 기 때문이다. 수학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중간 과정 이해가 아니라, 다음 과정과 관련 영역을 이해하기 어려워서일 것이다. 여기서 현대적 과학의 특성도 형성된다. 우리는 해석 학(미적분학의 다른 이름)을 다룰 때 삼각함 수의 특성에 의심을 갖지 않는다. 삼각함수의 이론적 토대가 검증되었다는 기대 때문이다. 방정식이란 하나의 모듈(module)이다. 관계 된 수학 이론은 이를 확장시켜 만든 구조 설 계(structual design)로 볼 수 있다. 각 모 듈은 다른 과학 기술에서 응용된다. 예를 들 어 통신기술은 삼각 함수의 파장 특성인 가우 시언 방정식을 토대로 하고, 양자역학은 유클 리드 공간을 복소수 평면으로 확장시킨 해밀 톤 공간 덕분에 연산을 할 수 있고, 의사들은 불츠만 방정식 때문에 주사제가 환자의 몸에 퍼지는 속도를 계산할 수 있다.
20세기 법학은 „"과학"이다. 과학적 규칙에 가깝다. 오늘날 법은 해석자의 관점이 아니 라, 법규와 법규 간에 정한 규칙에 따라 자동 적으로 결정되어야 하는 하나의 프로그램이 다. 여기서 법관은 고독한 법해석자가 아니 라 광범위한 법률들간 규칙 연결을 통해 법 을 기능적으로 활성화시킨다. 아주 오래전부 터 „법관은 "법률을 말하는 입"(몽테스키외) 이기도 했지만, 이제는 „법관은 법이 작동하 도록 도와주는 "기술자"여야 한다.(니클라스 루만)
윤리적 법과 법적 윤리 "윤리"란 한 사회에서 윤리적인 것으로 인식 되는 행동과 판단을 말한다. 현대사회 법제도 는 윤리적이지 않는 경우는 있지만 비윤리적 일 수는 없다. 그 이유는 위에서 말한 바와 같 이 현대법의 DNA때문이다. 법은 법의 해석 과 적용, 그 절차, 효과, 심지어 잘못 적용될 경우의 회복까지 규칙으로 정하고 있다. 그래 서 해석을 위한 규칙이 비윤리적이어야 그 결 론(법효과)으로 비윤리적 법이 나올 수 있다. 보통 사람들이 법적용에 분노를 느끼는 경우 는 있는데, 법률 자체가 문제인 경우보다는 그 적용이 (인간에 의해) 잘못 되거나, 판결 의 의미를 오해할 때 그런 감정에 빠질 수 있 다. 간단히 말하면 컴퓨터의 프로그램이 해킹 당했거나, 결과치를 잘못 판독한 것이다.
현재 우리사회에 통용되는 법률 중에는 „"윤 리" 표제를 달고 있는 법률들이 있다. 대표적 인 것이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약 칭 생명윤리법)이다. 이 법률은 윤리를 고양 시키거나 지키기 위한 규칙이 아니다. 법률은 인간의 존엄성이나 환자의 자기결정권과 같 이 기존 헌법이나 조약에서 형성된 법규범들 과 새로운 생명공학기술의 행위 방식이 법체 계 내에서 무리없이 순환되도록 조정해준다. 1990년대부터 논쟁된 생명윤리법의 많은 논 쟁들이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었는가 살펴보 면 이 법률의 성패를 판단할 수 있다. 만일 다 른 법규범과 규칙들이 조화되어 그동안 고민 하던 문제들이 줄어들었다면 정상적인 프로 그램으로 성공한 것이고, 그렇지 않고 지속적 으로 논쟁이 발생한다면 프로그램 버그 또는 오류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생명윤리법은 윤 리를 법으로 보호하는게 아니라, 사회적 가치 로 승인된 윤리가 작동하도록 법으로 결정한 기능성 목록으로 볼 수 있다.
법률을 보는 관점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사회적 가치를 보호하거나 강제하기 위하여 탄생했다고 보는 것이다. 이 경우 윤리는 법률의 구성 부분이다. 다른 관 점은 법률이 갈등을 얼마나 해소시키고 있는 가 평가한다. 이 경우 윤리적 관점은 구성 부 분이 아니라, 법률의 결과이다. 후자가 근대 적 법이해에 가깝다. 만일 윤리적 이해를 단 순 구성요소로 보고 입법 절차를 객관적 과정 으로 보면, 윤리적 이해가 바뀌었다고 법률이 개정될 필요성보다는 윤리적 이해를 근거로 법률을 유지할 필요성이 더 많다고 설명하기 쉽다. 그 이유는 윤리적 평가와 판단은 다른 사회적 이해와 달리 오늘날 복잡하고 다층적 인 토론을 거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배아 와 태아는 법개념이 아니다. 법률은 이를 직 접 규정하고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윤리법은 2003년 제정하면서 배아를 법 으로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정하고 있다. 또 한 태아에 대한 유전자 검사나 치료행위를 금 지한다. 당시 논쟁점은 배아 연구를 위한 인 간 배아의 생성 여부였다. 전통 윤리는 이를 금지하는 것이고, 과학적 입장은 임신 목적으 로 생성된 배아 중 그 목적이 종료된 경우 연 구할 수 있자는 것이다.
이 논쟁에 참여하면서 개인적으로 답답했던 이유는 윤리는 논쟁에 참여한 사람들이 주관 적으로 결정할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윤리란 주관적 결단이나 인지적으로 만들어 지는 결정이 아니다. 이 문제는 "비트겐쉬타 인의 „사적 언어" 문제인데, 솔 크립키(Saul Aaron Kripke)가 1982년 책 „Wittgenstein on Rules and Private Languag"( 남기창 역, 비트겐쉬타인 규칙과 사적 언어, 2008년 철학과 현실사)에서 아주 명료하게 해결하였다. 과학적 방식은 성립된 규칙을 따 라야 한다. 법률 제정은 자신의 주관적 윤리 관을 주장하는게 아니다. 근대적 입법이란 이 미 확립된 윤리 규칙에 확장할 규칙들이 조 화될 수 있는가를 검토하는 일이다. 즉, 새로 운 전자기기를 설치할 때 적당한 연결성을 검토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입법도 과학이다.
요컨대 우리는 "윤리적 법"의 시대가 아니라 "법적 윤리" 시대를 살고 있다.
하부체계로서의 법
8-90년대까지 법과대학은 권력에 관심을 가 진 젊은 학생들이 많았다. 당시만 해도 법과 대학을 졸업하고 일정한 시험에 통과하면 권 력에 다가간다는 미신이 통했던 것같다. 적어 도 2000년대 이후 법과대학생들은 그런 허 망한 꿈을 좇지 않는다. 다행이다. 사실 법학 이 권력행 통로였던 적은 없었다.
니클라스 루만(Niklas Luhmann 1927- 1998)에 따르면 사회는 다양한 체계들로 구 성된다. 사회는 너무 복잡해져서 더 이상 하 나의 학문이나 이론이 통용될 수 없게 되었 다. 하부체계는 다양한데 예술, 정치, 문학, 종교, 윤리, 기술 등의 자기만의 전문적 영역 이 포함된다. 법학은 그 중 하나이다. 루만의 생각은 현대 법학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 다. 체계이론은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한 데, 경희대 강희원 교수의 루만 „법사회학“ 번 역판은 일찍이 출간되었다. 2010년 이후 고 려대학교에 부임한 윤재왕 교수의 왕성한 번 역작업으로 체계이론의 중요 이론들은 대부 분 번역 소개되고 있다.
루만은 법학을 전공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탈 코트 파슨스에게 사회학을 배운 후 독일 마부 르크 대학에서 사회학과 교수를 지냈다. 그래 서인지 체계이론의 착상은 법학적 이해와 많 이 유사하다. 나는 사회학 이론가들 중 루만 같은 착상을 공유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 래서인지 루만은 사회학 보다는 법학에서 더 활발하게 연구된다. 특히 그의 „하부체계로 서의 법학“은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는 권력 적 법의 미신을 벗겨 내는데 유익하다. 법학 은 하부체계일 뿐이고 모든 것을 관장하는 메 타 이론이 아니다.
나는 2007년부터 학교에서 틈나는대로 학생 들에게 체계이론을 강의하는데 20대 초반 학 생들은 체계이론을 쉽게 이해하는 것을 목격 한다. 상대적으로 법학을 오래 전공한 전문가 들 집단은 체계이론에 대한 이해도가 낮다. 명확한 원인을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추측하 건대, 체계이론이 가진 전제와 배경에 젊은 세대들은 직감으로 친숙함을 느끼는 듯하다. 체계이론은 전산이론과 많이 닮아 있다. 이론 의 설계 자체가 생물학에서 비롯되었고, 주된 설명들이 정보통신과 컴퓨터 등의 기술적 작 동원리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루만은 법 과 사회를 코드와 프로그램으로 작동되는 컴 퓨터 작동 원리로 설명한다. 반면에 현역 법 률가들은 전산 기술에 이해가 없는 경우와 이 기술적 설명을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일부 법학자들은 루만의 체계이론을 마치 철학적 형이상학처럼 오해하기도 한다.
젊은 세대들은 컴퓨터와 네트워크 이해가 빨 라서 그런지 몰라도 체계이론의 특성을 쉽게 이해한다. 나는 가끔 수업시간에 학생들과 재 미있는 실험을 하기도 하는데, 법률 문언을 세부적인 요소 명제로 바꾸고, 이를 작동할 수 있는 간단한 명령어로 코딩 해보는 것이 다. 프로그램으로 작동시키면 워드프로세서 의 오탈자 찾기처럼 순식간에 오류가 발견된 다. 판례를 요소 명제로 바꾸고 코딩하여 프 로그램에 물리면 형식 오류와 다른 명제(법 률)와 모순 관계를 찾아 준다. 이 실험을 통 하면 법학에서 난해한 문제란 진짜 어려워서 일 수도 있지만, 이처럼 텍스트 자체의 진술 간 모순 관계 때문이기도 하다. 즉 형성된 판 례의 논리 체계나 다른 법규 관계 설정(진술) 이 잘 못되어 오류가 발생하는 경우 학생들의 지적 수준을 탓할게 아니다. 이런 경우는 사실 꽤 많다.
Super Cruncher 데이터 기반 이해
현대 과학이론은 사람의 직관이 아니라 객관 적 데이타에 따라 문제 해결을 시도한다. 통 상 고전적 세대들은 이해 못하거나 꺼리는 행 동 방식들이 있다. 나와 비슷한 세대들은 증 거에 기반한 판단을 학문적 훈련의 기본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새로운 세대들은 데이타 중 심 판단을 더 선호하는 듯하다. 좋은 예는 부 모와 자녀 간 컴퓨터 게임에 대한 의견 차이 이다. 특정 세대 집단은 게임을 무의미한 시 간 낭비로 생각하는데, 어린 세대는 게임이 주는 즐거움을 네트웍에서 데이타가 빠르게 전달되는 것 자체에 흥미를 가진다. 여기서 열정적 게임광이 나중에 세계적인 프로게이 머로서 된다는 식의 우연성을 말하는게 아니 다. 그런 분석은 대부분 고전 심리 이론의 오 해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경제학자들은 미국으로 자살테러 를 위하여 잠입하는 테러범들이 생명보험에 가입하는게 유리한지 고민할 수 있다. 시카고 대학교 스티븐 레빗(Steven David Levitt) 교수는 „"괴짜 경제학"(Freakonomics)이라 는 유명한 책 2편(Super Freakonomics, Harper Collins 2011)에서 이 문제를 다룬 다. 레빗 교수의 설명은 이렇다. 미국의 정보 국에 의해 관리되는 테러리스트는 나이와 성 별, 출신, 이름, 종교, 가족관계, 그리고 금융 정보로 구분된다. 자살테러를 목적으로 입국 하는 경우 일정 기간 사용할 자금만 가져온 다. 그렇기 때문에 조회한 조건에 맞는 대상 이 되는 순간 수사기관의 요주의 인물이 된 다. 이 대상이 안 되려면 생명보험을 가입하 는 편이 유리하다. 생명보험을 가입하고 있는 자는 적어도 짧은 기간 안에 자살 테러를 할 확률이 낮기 때문이다.
데이타 기반 시장은 실물 경제이론을 전복시 키기도 한다. 운동화의 실물 시장은 소비자 들이 원하는 디자인과 기능의 생산과 이를 광 고하여 판매되는 최종 수입으로 평가된다. 그 러나 미국계 회사 나이키의 에어 조던 시리즈 는 전통적 생산-소비의 규칙을 깨고 있다. 마이클 조던이란 농구선수 이름으로 출시된 1985년 시리즈는 현재 32번째 에디션이 출 시되고 있다. 한 에디션마다 생산량과 기간 이 정해져 있는 특성상 조던 시리즈의 특정 색상과 제품군은 생산 중단 후 가격이 올라가는 현상을 만든다. 출시될 때 69불이던 운동 화가 2018년 3천만원에서 그 이상에 판매되 는 경우도 있다. 이를 Resell(재판매) 시장이 라고 한다. 나이키 에어 조던 리셀 시장 총액 은 2018년 기준 1조원이 넘었다. 리셀 경제 는 다른 운동화나, 고급 시계, 가구, 자동차 등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리 셀시장의 특징을 데이타 분석으로 보고 있다.
데이타는 판매량과 선호도, 그리고 남은 재고 와 다른 매스 미디어 노출도 등을 제시한다. 게임에 익숙한 세대들은 전통 경제학처럼 직 관에 따라 이해된 가설과 추측으로 구성된 요 소(증거)를 통해 평가하는게 아니라 네트웍 에서 순간적으로 처리되는 데이타 흐름의 특 성을 새로운 가치로 이해한다. 운동화의 디자 인이나 기능이 아니라 전체 생산량과 선호도 관계의 흐름을 보여주는 중립적 데이타를 원 인으로 파악할 수 있다. 시장에서 많이 선택 된 인기 제품보다는 데이타의 집중과 흐름이 빨라지는 희귀 제품이 네트웍에서 리셀 시장 에서 가격 폭등으로 이어진다는 정보 분석이 가능해진다. 컴퓨터 게임에 익숙한 세대는 가 공된 정보가 아닌 순간적 데이타 흐름을 통해 판단하는데 익숙하다.
과거 리니지 사건 때 게임 아이템이 경제적 가치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이제 고가의 게임 아이템은 거대 상 속재산으로 편성될 만큼의 규모로 성장했고, 몇 해 전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비트코인(암 호 화폐)의 기반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인공 지능 발전과 함께 블록체인 기술은 전통적으 로 법학이 담당하던 인증 체계를 빠르게 잠식 하고 있다. 조만간 공증과 같은 분야는 블록 체인 기술로 대체될 전망이다. 블록체인 기 술은 비밀유지가 필요한 자료들을 해킹만 아 니라 저작권 보호까지하여 보호할 수 있다.( 최근 명품 브랜드들은 이 기술을 이용한 정품 인증 시스템을 만들었다) 부동산 등기는 블 록체인으로 관리하면 영구적 보안이 가능하 고, 이를 스마트 컨트랙트(계약) 기술과 연계 시키면 부동산 거래는 1초 이내에 자동으로 완벽하고 안전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근대 법학이 규칙의 기능적 관리로 인식되면 서 고도로 발전한 전산 프로그램으로 급격히 전환될 가능성은 1960년대부터 법학에서 활 발하게 예측되었다.
칼럼을 마치며
1년간의 크레도 칼럼을 통해 낙태와 존엄사, 유전자 편집술 등의 주제를 다루었다. 목적 은 의생명공학 기술의 발전에 따른 사회적 문 제에 법학이 어떤 해결책을 제안할 수 있을 까 하는 궁금증 때문이었다. 의료 법학은 새 로운 분야이다. 그런데 의료 법학의 연구 내 용을 보면 항상 유지되는 패턴이 있다. 새로 운 문제 해결을 위하여 오래된 해결책을 적용 하는 것이다. 내 생각에 오래된 해결책(법학) 은 현재의 문제 해결에 약할 뿐 아니라 오래 된 문제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다.
의생명공학 기술과 법학은 같은 시공간에 있 다. 함께 발전하고 있다. 체계이론적으로 법 은 또 다른 하부체계인 의생명공학과 윤리학이 스스로 해답을 찾도록 도와 줘야 한다. 법 의 역할은 거기서 끝난다. 이를 넘어 어떤 가 치적 강제를 법으로 제안하는 일은 현대적 법 학과 부합하지 않는다. 법관은 직업인이고 사 회적 가치를 결정할 자격을 가지지 못한다. 비전문적인 입법과 권한을 초과한 주관적 판 결이 만연하는 현실은 매우 아쉽다. 체계이 론의 실질적 완성자로 볼 수 있는 군터 토이 브너(Gunther Teubner 1944-)는 하부체 계 내의 정밀한 토론과 문제해결이 증가되어 야 하며, 법률에 과다한 기대를 거는 현상이 지속되면 결국 법체계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 는 현상을 '조종의 트릴레마'(regulatrory trilemma)라고 한다. 법학이 사회 현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다른 하 부체계와 조화되지 못한 채 영향력이 과다해 지는 경우(법률 만능주의)를 주의해야 한다. 법에 과다하게 해결을 기대하고, 원하는 답 이 나오지 않을 경우 실망으로 바뀔 수 있다. 사회 내 규칙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위험 하다.
전문화된 법은 더욱 세분되어 각자의 영역을 만든다. 오늘날 유명한 법학자도 일반인 정도 수준의 이해와 과거적 이해에 고정된 경우가 많다. 물론 유명한 윤리학자나 의생명공학자 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의 무능력은 최종적으 로 시장의 선택을 통해 걸러져야 할 수 밖에 없다. 전문 하부체계 역시 사회의 자율적 선 택에 따라 결정될 수 있다. 적어도 헤겔과 베 버 이후 사회과학은 울리히 벡(Ulrich Beck 1945-2015)이나 기든스(Anthony Giddens 1938-)의 프로젝트처럼 개인을 중심 으로 제도가 결정되는 것은 반대한다. 고전적 이해 방식에서 잠시 떠나보는 것이 현대 법제 도를 이해하는 유리한 조건이다.
법학은 실제 사태를 인식할 수 있는 프로그램 이 아니다.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절차 과정을 세련되게 만드는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전 통적인 정의나 윤리, 도덕은 각 전문 하부체 계에서 스스로 결론을 얻도록 법은 그 절차 를 만들어야 한다. 경험적으로 보면 무엇을 얻으려는 집단이 기존 규칙의 변경을 요구한 다. 이들이 제공하는 정보는 제한적이고 왜 곡되기 쉽다. 대부분의 생명공학 기술과 관 련된 사건들은 같은 패턴을 가진다. 특정 기 술의 이익을 사회적으로 승인 받기 위하여 입 법과 사법 절차를 도구화하는 것이다. 입법은 하부체계 영역으로 논의가 보장되도록 절차 를 구성하고, 그에 따른 결론이 기존의 규칙 들과 조화되도록 결정해주고, 입법 이후 파생 될 규칙 간의 균형성이 확보되게 만들어야 한 다. 시민의 자율적 선택이 최소화될 수 있어 야 한다. 사법은 규칙 간의 논리적 결과에 우 선적으로 일치해야 하고, 교환되는 다양한 데 이타를 통해 규칙 간 모순 없는 행위 기대가 판결의 결과로 활성화되도록 구성해야 한다. 법은 강제가 아니라 합리적 조절로 모두가 승 인할 수 있도록 문제를 해결해줘야 한다. 법 을 강제로만 생각하면 국가는 깡패 집단과 다 를 바 없다.(Hans Kelsen)
신동일 교수
고려대학교에서 법학박사 학위 취득 후, 독일 괴팅엔 대학교에서 박사 후 연구과정을 이수하였다.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실장, 기독교생명윤리협회이사, 낙태반대연합 법률자문위원을 역임하였고, 현재 국립한경대학교 법학과 교수이다.